▒ 예술의전당 후원회 릴레이 인터뷰 - 김영호 일신방직 회장 : 예술혼에 깊이 공감하는 원칙 있는 후원자
   



[ 2011년 10월호 ]
 
예술의전당 후원회 릴레이 인터뷰 - 김영호 일신방직 회장
예술혼에 깊이 공감하는 원칙 있는 후원자

후원회 릴레이 인터뷰 10월의 주인공을 만나기 위해 들어선 일신방직 본사. 하나의 갤러리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뛰어난 예술작품이 가득한 본사 사옥은 마치 CEO의 예술적 혜안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김영호 일신방직 회장을 만나 그가 생각하는 예술과 후원의 원칙을 들어보았다.

김영호 회장과의 인터뷰를 위해 일신방직 본사를 찾았다. 입구에 우뚝 솟아 있는 ‘일신 여의도 91’ 이라는 커다란 조형물이 눈에 띄었다. 이탈리아의 조각가 마우로 스타치올리의 작품이다. 김영호 회장은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올림픽공원에서 이 작품을 접하고 작가에게 관심을 갖게 되어 그의 작품세계를 검토한 후 작가를 만나 작품을 의뢰했다고 이력을 설명했다. 본사 사옥은 갤러리라 여겨질 만큼 미술작품으로 가득했다. 솔 르윗, 도널드 저드, 장 미셸 바스티아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김 회장의 심미안은 평생 지속된 예술에 대한 관심과 사랑에 특유의 세심함이 어우러진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수집한 작품은 직접 고른 것이라 했다. 그의 예술 후원 원칙이 궁금했다. “진정한 예술가는 현실이나 인기에 타협하지 않고 시대를 앞서가는 창의력과 독창성을 가지고 작품을 하기 때문에 자기가 사는 세대에 제대로 인정을 받기 쉽지 않습니다. 역사를 보면 지금 널리 알려진 작곡가나 높은 작품 가격을 받는 미술작가 등은 당대에는 인정을 못 받아서 좌절하고 불행한 삶을 산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예술 애호가는 과거에만 집착하지 말고 시대를 앞서가는 작가의 작품들을 많이 접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는 지금도 미술대학의 졸업작품전에서 젊고 가능성 있는 작가를 찾는다고 했다. 같은 맥락에서 고전음악 일변도의 우리나라 클래식 음악계에 대한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음악 애호가라면 현대음악에도 애정을 갖고 들어야 하며, 공연계 역시 현재 활동하는 작곡가가 작품을 발표할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는 지론이다. 실제로 그는 진은숙의 독일 유학 시절, 그녀의 작품을 CD로만 듣고 바로 후원을 결정했다고 했다. 지난 2007년 몽블랑예술후원자상을 수상하고 그 상금을 작곡가 진은숙에게 쾌척했다. 김 회장은 오랜 시간 동안 자신만의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생각을 풀어냈다. “예술가는 타고난 심미안과 예민한 감각을 지닌 사람들이며, 대중보다 앞서 생각하고, 상상하고, 표현하기 때문에 예술가들의 발상은 일반 대중의 생각과는 차이가 많이 납니다. 예술가가 때로 너무 앞서가다 보니 동(同)시대 사람들에게 외면 당하기도 하죠. ‘예술의 대중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예술의 질을 낮출 우려가 있습니다. 인기에 영합하는 순간 예술 본연의 순수성을 상실할 수 있기 때문이죠. 예술을 제대로 향유하기 위해서는 예술의 대중화가 아닌, 예술 자체에 일반 시민이 다가갈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합니다. 예컨대 미술관이나 공연장은 시내 한가운데 있어 누구나 일상에서 쉽게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정부와 기업은 재능 있는 예술가의 작품 활동과 이를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지원해줘야 합니다.”

음악, 미술 등 예술에 전방위적 관심을 가진 그가 경영하는 일신방직은 6년 연속 ‘존경받는 기업’으로 선정됐다. 일관된 가치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 그만의 경영원칙을 물었다. “원래 경영을 할 생각은 없었어요. 건축학을 전공했고 건축가가 되려고 했죠. 경영을 시작한 후에는, 내가 경영을 잘 몰라서 우선 객관적인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하려고 노력했어요. 편견이나 고정관념에 사로잡히면 안 되죠. ‘변화’를 특히 민감하게 읽어내야 합니다. 예술가에게는 창의력이 생명이지만 기업가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아요. 분야마다 다를 수 있죠. IT기업과 방직 기업에 요구되는 덕목이 같지 않습니다. 물론 기업가도 예술가처럼 끊임없는 자기 혁신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지속적인 이익을 내는 게 기업의 사회적 의무입니다. 고용을 창출할 뿐만 아니라 국가에 세금도 많이 낼 수 있기 때문이죠. 돈을 벌어야 예술 후원도 가능하고요.” 그는 중학교 2학년 미술 시간에 빈센트 반 고흐의 삶을 듣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평생 그림 하나를 겨우 팔았어요. 그것도 동생을 통해서요. 지금은 수천만 불을 호가하는 작품들인데… 얼마나 불행한 삶을 살았겠어요.” 그는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며 진정성 있는 예술가들이 생계 걱정 없이 마음껏 작품을 발표할 수있는 토양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경영과 후원 사업 모두 책임이 무거운 의사결정 과정의 연속인데 그 과정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어떻게 풀까? 그는 스트레스와 정면승부를 한다고 했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데 스트레스는 불가피하죠. 별로 의식 안 해요. 올여름에 비가 많이 왔잖아요. 다른 사람들은 비가 계속 와서 우울하다고 그러는데, 저는 그럴 때일수록 묵직한 음악을 듣습니다. 그 자체를 즐기는 거죠.”그는 KBS 클래식 FM이 우리나라 유일의 클래식 음악 라디오 채널로서 정통 클래식 음악과 현대음악에 더욱 주력해달라는 바람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예술의전당에 대해서도 한마디 덧붙였다. 한국 최고의 예술 공간이니만큼 더 멀리, 더 크게 봐야 하며, 신예 작곡가의 음악을 꾸준히 소개하고, 젊고 창의적인 작가가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지속적으로 부여해달라고 당부했다. 그의 예술에 대한 혜안과 진취적 열정이 우리나라 문화예술후원사업 전반에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글 _ 김인겸
photoⓒ 박경복 (예술의전당 홍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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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겸은 예술의전당 명예기자이다. 그는 휘문고와 고려대 서양사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논술공감학원 원장이다. 고교생 논술교육이 본업이지만, 작가로 데뷔하기 위해 글을 쓰고 있다. 그래서 9살부터 해오던 바이올린은 잠시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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