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호의 오페라글라스 - 드보르작 <루살카> : 불완전하기에 우리는 더욱 사랑해야 할 존재
   



[ 2011년 10월호 ]
 

박종호의 오페라글라스 - 드보르작 <루살카>
불완전하기에 우리는 더욱 사랑해야 할 존재


바다 깊은 곳에 용궁이 있었다. 그곳에서 용왕의 다섯 딸인 인어공주들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막내 공주는 물 위로 올라가서 배 위에 서있는 한 왕자님을 보게 되었다. 그녀는 한눈에 왕자에게 반해버린다. 그녀는 그와 얘기도 하고 만나고 싶어졌지만, 하반신이 물고기인 몸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마녀를 찾아가서 하반신을 인간처럼 다리로 만들어달라고 사정한다. 마녀는 특수한 약을 만들어서 그녀에게 주기로 했는데, 대가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녀가 인간이 될 수는 있지만 말을 할 수 없다는 것. 즉 그녀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탐내던 마녀가 약의 대가로 혀를 잘라 가져가겠다는 조건을 내세운 것. 공주는 인간만 될 수 있다면 좋다고 승낙했다. 또 하나의 조건이 있었다. 그녀가 사랑하는 왕자님과 결혼을 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결혼에 실패한다면 그녀는 사람으로 머물지도 못하고 인어공주로 다시 돌아올 수도 없게 된다. 영혼도 잃어서 영원한 죽음에 머물게 된다. 사랑에 눈이 먼 공주는 그 조건도 수락한다. 그녀는 마녀의 약을 먹고 하반신에 두 다리가 돋는다.

육지로 올라간 그녀는 예상대로 왕자의 관심을 받고, 왕자의 손에 이끌려 왕궁으로 간다. 그러나 왕자는 그녀의 기대와 신의를 저버리고 결국 다른 나라 공주와 결혼식을 올린다. 이제 그녀는 영혼을 잃게 되었다. 그때 바다의 수면에서 갑자기 인어공주의 언니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녀들 모두 인어의 상징인 머리카락이 짧게 잘려 있다. 동생의 죽음을 막아보려고 마녀에게 머리카락을 주고 대신 그녀를 살릴 방도를 찾아서 들고 온 것이다. 그녀들은 동생에게 칼을 주면서 “이칼로 너를 버린 남자, 왕자의 심장을 찔러야 한다. 그래서 왕자의 뜨거운 피가 너의 발등에 떨어지면, 발은 사라지고 다시 물고기의 꼬리가 나타나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단다” 라고 말한다. 공주는 칼을 받았지만, 왕자를 찌르지 못한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구원을 받는다. 그녀는 인어에게 주어진 3백 년 동안 착한 일을 하면서 진정한 행복과 사랑하는 마음을 누리게 된다. 이상은 덴마크의 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1805~1875)의 동화 ‘인어공주’의 오리지널 줄거리다. 왜 동화를 이야기할까? 이 이야기는 ‘인어공주’의 이야기일 뿐 아니라 ‘엄지공주’에도 해당하고, 또한 오페라 <루살카>도 이와 대동소이하다. 이것은 안데르센의 창작이라기보다는 북유럽 및 동유럽에 오랫동안 전해 내려오던 구전(口傳)설화이다. 물론 안데르센이 문학적인 옷을 입히고 예술적 향기를 입혔지만,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던 이야기이다. 이 줄거리가 체코 작곡가 드보르작(1841~1904)에 의해 오페라로 다시 탄생하였다.

슬픈 인어공주, 루살카를 아시나요?
드보르작의 이 작품은 전형적인 ‘메르헨 오페라’의 하나이다. 메르헨 오페라란 독일의 작곡가 엥겔베르크 훔퍼딩크에 의해 대표되는 오페라 장르로서, 동화적인 이야기들을 다루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동화라 해서 모두 메르헨 오페라라고 할 수는 없으니, 거기에는 독특한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환상적인 장면, 요정이나 마술 같은 것들이 등장한다. 여기에는 어떤 환상적인 효과를 내는 미약(媚藥)이 등장하는 것이 보통이다. 둘째, 주인공들은 어린 소년 소녀나 젊은이들인 경우가 많다. 셋째, 이야기의 플롯은 주인공 소녀가 왕자님과의 결혼을 꿈꾸는 것이 보통이다. 넷째, 결론은 악한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착한 심성 때문에 소망은 이루어지고 결국 왕자와 혼인하는 것이 대단원이다. 여기에 해당하는 전형적인 오페라가 잘 알려져 있는 <신데렐라>이다. 물론 드물게 소년이 공주와 결혼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투란도트>가 그 예다. 이와 같이 메르헨 오페라나 동화들은 해피엔드로 끝나는 것이 전형이다. 그러나 드보르작이 체코어로 불리도록 작곡한 <루살카>는 그렇지 않다. 너무나 슬프고 안타까운, 그러나 가슴 서늘한 아름다움으로 대단원의 막이 내려지기 때문에 <루살카>는 메르헨의 차원을 훌쩍 뛰어넘어, 진정한 비가극 걸작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깊은 숲 속 한 호수에 루살카라는 물의 요정이 살고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도 물의 요정이며 요정 자매들과 친구들이 있어서 그녀의 일상은 행복하고 천진난만하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가 왕자를 만나기 전까지였다. 호수에 물을 마시러 온 왕자의 모습을 본 순간 그녀는 그만 상사병에 걸려버린다. 그녀는 왕자와 사랑하기를 소망하지만, 그녀는 단지 물일 뿐 인간 같은 몸이 없다. 그녀는 밤마다 달을 바라보면서 달님에게 소원을 빈다. 이것이 유명한 아리아 ‘달에게 바치는 노래’ 다. 그녀는 마녀 예지바바를 찾아가서 여자가 되게 해달라고 조른다. 예지바바는 여자가 되는 약을 지어준다. 하지만 조건이 있다. 인간이 되면 그녀는 목소리를 잃어버려서 말을 하지 못하게 된다. 또한 그녀가 사랑하던 남자에게 버림받게 되면, 그녀는 인간도 되지 못하고 다시 요정으로 돌아올 수도 없다. 구천을 떠도는 불쌍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인어공주’와 같은 스토리다. 하지만 사랑에 눈먼 그녀에게 그런 조건이 귀에 들어올 리 없다. 그녀는 약을 먹고 이내 여자가 된다.

사냥을 위해 다시 숲에 온 왕자는 처음 보는 아름다운 루살카를 보고 한 눈에 반한다. 그는 그녀의 과묵함에 더욱 매료된다. 궁정의 여성들은 너무나 말이 많은데 반하여 루살카는 늘 말이 없고 순종적으로 보인다. 왕자는 그녀에게 청혼을 한 뒤 그녀를 왕궁으로 데려간다. 하지만 왕궁에서 일주일가량 결혼을 준비하는 동안 매력적인 이국(異國)의 공주가 나타난다. 말없는 루살카에게 싫증난 왕자는 이국의 공주에게 마음이 돌아선다. 결국 루살카는 버림받는다. 루살카는 숲으로 돌아오지만, 다시 이전처럼 요정이 될 수 없다. 예지바바를 찾아가자 한 가지 방법을 일러준다. 즉 자신을 버린 남자, 왕자를 안은 뒤 그의 피를 다 빨아 마시면 왕자는 죽지만 자신은 요정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때 왕자가 숲으로 그녀를 찾아온다. 그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면서 다시 루살카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그녀를 안으려 한다. 이에 루살카는 그를 막으면서 “나를 안으면 당신은 죽게 된다” 라고 일러준다. 그러나 왕자는 죽는다 해도 그녀를 안겠다고 말한다. 이에 루살카는 왕자의 진실한 사랑을 알게 된다. 비록 이미 늦었지만…. 죽어도 좋다는 왕자를 그녀는 다정하게 껴안는다.
왕자는 그녀의 품에서 죽고, 그녀 역시 다시는 요정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상대방의 진실한 사랑을 느끼면서 함께 껴안는다.

현실에 찢긴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
비록 동화에서 비롯되었지만, 드보르작의 오페라는 대단히 감동적이다. 음악적으로는 수준이 높고 체코어의 습득 역시 쉽지 않아서 세계적으로 좋은 공연이 많지는 않다. 미국의 소프라노 르네 플레밍은 이 매혹적인 역할에 도전하고자 오랜 세월 체코어를 마스터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하여 2000년 파리 바스티유 극장에서 이 역할을 불렀다. 공연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주로 체코 가수들에 의해서만 불리거나, 영어로 번안되어 영미 가수들에 의해 제한적으로 공연되던 이 오페라가 비로소 월드클래스 가수들에 의해 국제적으로 불리는 획기적인 전기가 되었다. 이 공연은 로버트 카슨의 연출로도 유명하다. 21세기 가장 성공적인 연출가의 한 사람인 카슨은 획기적인 연출로서 쟁쟁한 스타급 성악가들이 나온 <루살카>를 결국 ‘카슨만의 <루살카>’로 만들었다. 산중 호수 같은 것은 아예 없다. 무대는 호텔이다. 사랑은 호텔에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그는 무언으로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무대 한가운데에는 시종 넓은 더블베드가 자리 잡고 있으며, 드라마는 거기서 일어난다. 호수가 아니라 호텔의 수영장 주변에서 놀던 루살카는 달님이 아닌 호텔방 전등에 기도하고 사람이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물의 요정인 루살카가 사람으로 변신하는 대목은 연출가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영국 국립오페라(ENO)의 <루살카>는 카슨의 선배격인 데이비드 파운트니의 연출로, 호수의 귀신같은 고전적인 요정들만 나오던 그간의 <루살카>에 혁신을 가져온 무대이다. 파운트니는 루살카를 그네에 매달고 그녀의 두 다리를 붕대로 묶어 땅 위에서 걸을 수 없게 만든다. 그녀가 여자가 되었을 때 붕대는 비로소 풀린다. 이러한 연출은 ‘인어공주’의 다리가 생겨나는 과정을 연상시키니, 파운트니도 이 작품의 뿌리가 ‘인어공주’ 임을 잘 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카슨의 연출도 크게 다르지 않은 범주에 있다. 여기서는 속옷만 입고 살던 루살카가 흰 드레스를 몸에 걸침으로써 여자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숲으로 다시 사냥을 나온 왕자는 여자의 옷을 입은 루살카를 발견하고 왕궁으로 데려간다.

제2막에서는 이제 루살카가 인간세상의 현실에 직면하게 되고 인간과의 사랑이 만만치 않음을 몸소 겪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제2막 한가운데 위치하는 발레 장면이다. 궁정무도회로 곡은 폴로네이즈인데, 연출가들은 이 대목에서 자신의 상상력을 충분히 발휘한다. 카슨의 경우는 루살카가 걱정하는, 또한 앞으로 벌어지게 될 이야기를 무용수들이 몸으로 표현하게 한다. 파리 국립오페라 발레단의 세련된 외모와 동작들은 바스티유 프로덕션을 한층 돋보이게 해주었다. 이 발레 장면을 뮌헨의 마틴 쿠세이는 한층 충격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는 남자와 여자 무용수들이 모두 웨딩드레스를 입고(턱시도가 아닌!) 행진과 율동을 하는데, 그들의 두 손에는 커다란 야생동물의 사체가 들려 있다. 사슴으로 보이는 동물들은 머리를 제외하고 온몸의 가죽이 벗겨져 있다. 어떤 것은 내장을 파낸 것도 있다. 무용수들은 짐승을 껴안고 내장이 벌어진 몸통 안을 핥는다. 쿠세이의 연출이 대부분 충격적이지만 이건 정말 끔찍하다. 하지만 쿠세이를 보러왔다면 각오했어야 한다. 이 대목은 당연히 인간의 이중성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서 제1막 마지막에 루살카를 발견한 왕자가 “나는 암사슴을 잡으러 왔지만, 이제 당신을 만났으니 더 이상 암사슴을 쫓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라고 외친다. 왕자, 아니 남자에게 그녀는 역시 한 마리 암사슴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버림받은 루살카는 제3막에서 결국 다시 호수로 돌아오지만, 그녀의 영혼은 갈기갈기 찢긴 상태다. 예지바바는 다시 찾아온 그녀에게 자신을 버린 남자의 피를 빨아먹으면 영혼을 되찾을 수 있다는 처방을 일러준다. 하지만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그녀는 비탄에 빠진 아리아 ‘내 인생은 찢기어졌다’를 열창한다. 이윽고 왕자가 그녀를 찾아온다. 쿠세이의 연출에서는 제3막의 뒷부분이 정신병동으로 설정된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모든 정황들로 봤을때, 모든 사건이 루살카의 머릿속에서 벌어진 일일 수도 있다. 아니면 현실이 너무 힘들어서 정신병동으로 도주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세상에 정상적 상태와 광적 상태 중 어느것이 옳은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 아닌가?

그 여자를 안으면 죽는다는 것을 알고도 그녀를 원하는 남자가 세상에는 몇이나 될까?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일지 모른다. 죽는 줄 알면서도 그녀에게 안기기를 절실하게 소망하는 왕자와 함께 부르는 둘의 마지막 2중창은 처절하다. 함께 행복하게 살 수도 있었는데, 함께 죽어야 하는 둘의 처지가 너무나 안타까워서 그녀는 절절하게 노래한다. “당신은 그때 왜 저를 안았습니까? 당신은 그때 왜 저의 입술에 입 맞추었습니까? (중략) 저는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원한 것은 열정이었죠” 라 루살카는 울부짖으며 뜨겁게 왕자를 껴안는다. 그녀의 마지막 대사 “당신의 사랑을 위해서, 당신의 아름다움을 위해서, 그리고 당신의 변덕스러움을 위해서”는 너무도 애절하다. 인간은 모두 아름답고 사랑스럽지만, 또한 변덕스럽다. 하지만 그렇게 변덕스럽고 불완전하기에 인간은 더욱 사랑해야 할 존재인지도 모른다.

글 _ 박종호
일러스트 _ 한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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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호는 정신과 전문의로서, 오페라, 클래식, 여행 등에 관한 글을 쓰고 강의를 한다. ‘풍월당’ 대표이며, 오페라 매거진 ‘테아트로’ 편집주간이다. 저서로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1,2,3, <불멸의 오페라>1,2, <박종호에게 오페라를 묻다>, <유럽 음악축제 순례기>, <이탈리아 여행기 - 황홀한 여행>, <오페라 에센스 55>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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