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레이 페라이어 리사이틀 : 소년 같은 미소 속에 깊고 원숙해진 음률
   



[ 2011년 10월호 ]
 
머레이 페라이어 리사이틀
소년 같은 미소 속에 깊고 원숙해진 음률

2011. 10. 29(토)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머레이 페라이어를 뭐라 수식할 수 있을까. ‘건반 위의 서정시인’이라기에는 그가 펼쳐 보이는 스펙트럼이 너무나 깊고도 자유롭다. 강요하지 않고 청중의 마음을 피아노로 다독여주는 우리 시대의 자유인, 머레이 페라이어가 오는 10월 리사이틀을 갖는다.


사람들은 피아니스트에게 이런저런 수식어를 붙이기 좋아한다. ‘건반 위의 사자왕’, ‘건반 위의 수도사’, ‘건반 위의 골든 보이’ 등 이런식으로 말이다. 이런 별칭은 아티스트의 이미지를 쉽게 환기시키는데 도움을 주지만, 그 정도가 지나쳐 남용되는 감이 있다. 머레이 페라이어도 마찬가지이다. ‘건반 위의 서정시인’ 이라는 문구가 그를 속박하고 있다. 이제 예순 네 살을 맞이하는 우리 시대의 명피아니스트 머레이 페라이어를 어떠한 표현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전공이든 취미로든 피아노를 한 번이라도 만져본 적 있는 사람은 마우리치오 폴리니나 크리스티안 침메르만, 혹은 이보 포고렐리치와 같이 완벽한 기교로 무장되어 있는 비르투오소 타입 연주자를 접하게 되면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 주눅이 든다. 음악을 접함으로써 악기에 손을 대는게 오히려 싫어지는 것이다. 페라이어는 다르다. 그의 레코드나 공연을 감상하고 나면 연주가 참으로 수려해 무릎을 치고 음악과 악보를 가까이 두게 한다. 곡의 소재를 어떠한 맛으로 조리하겠다는 의도성이 배제되어 있는 페라이어의 음악은 듣는 이로 하여금 작품 자체에 더욱 다가가고 싶다는 기분이 들게 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이 페라이어만의 매력이다.

페라이어의 연주가 그냥 겸손한 마음가짐에서 절로 우러나오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는 학구적 자세에서 음악의 가요적 성격에 집중하는 음악가이다. “제가 생각하기에 음악은 항상 노래합니다. 바흐나 베토벤의 작품 같은 경우를 봅시다. 한 성부의 노래가 두드러지고 중음 성부나 저음 성부가 합류하여 그 노래를 보조합니다. 결국 모든 성부가 노래를 하게 되는 것이죠. 따라서 타악기 스타일로 피아노를 두드리는 연주는 음악의 생명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페라이어의 지론이다. 레코드로 따진다면 오랜 기간 스테디셀러로 애청되고 있는 슈베르트 즉흥곡 앨범과 멘델스존 무언가 앨범(Sony) 등이 그의 주장이 잘 반영되어 있는 증거 자료이다. 1990년대 중반 헨델의 건반음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을 때에도 그는 동일선상의 방법론으로 접근했다. 작곡가가 남긴 오라토리오와 오페라를 듣는 것으로 헨델에 대한 탐험의 문을 열었다.

동시에 페라이어는 연주의 다양성과 주관성을 인정하는 자유인이다. “아시다시피 피아니스트들은 각자마다의 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멋지다고 받아들입니다. 모든 인간의 음성이 같다면 끔찍하지 않을까요. 베토벤 작품을 연주하는 순간, 저는 베토벤으로 통하는 유일한 열쇠가 되겠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가 작곡하며 고민했던 것을 나름 이해하여 이를 전달하려 최선의 노력을 기울 일 따름입니다.” 세월에 따른 해석의 변화도 당연한 것이라 강조한다. “어린아이가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를 본다면 지칠 겁니다. 그렇지만 40대나 50대가 되어 <마술피리>를 만난다면 전혀 다른 작품으로 느껴지게 되죠.”

강요하지 않는, 마음을 다독이는 피아니즘
페라이어의 레퍼토리 폭은 비교적 좁은 편이다. 바흐와 베토벤, 슈베르트와 슈만 등 독일 오스트리아의 고전파와 낭만파 음악을 주된 레퍼토리로 삼아 이들이 쓴 곡들을 적절히 배합한 프로그램의 리사이틀 활동에 치중하고 있다. 모차르트와 베토벤 협주곡 세트를 제외한다면 여타 피아니스트들이 남발하는 소나타 전집도 만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페라이어의 공연은 뉴욕에서부터 부다페스트에 이르기까지 어디서나 그가 나타난다는 소식만 전해지면 티켓이 순식간에 매진된다. 청중들은 그의 바흐에서 따스한 봄바람이 뺨을 어루만지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고백하고, 슈만 ‘어린이 정경’에서 갖가지 종류의 고급스러운 브랜디를 시음하는 것 같았다고 찬양한다. 깊은 여운에서 페라이어가 원숙한 경지에 도달했음을 말하는 관객도 있다. 최근 출시된 브람스 소품집(Sony)도 연주가 현묘하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머레이 페라이어는 1947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토요일이면 아들을 데리고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으로 관람을 하러 갔다. 네 살 때부터 피아노 레슨을 받게 했지만, 억지로 음악가가 되라 종용하지 않았다. 덕분에 연습에 매달리지 않고 10대를 보냈다. 1964년 열일곱 살이 되어서야 첫 번째 연주회를 가지고 맨해튼 메네스 음대에 입학, 작곡과 지휘를 공부하였다. 1966년 카네기 홀 데뷔 후 순탄한 경로를 밟아나가며 명성을 쌓아나갔다. 한창 주가를 올리던 그에게 액운이 닥친 해는 1990년. 잘린 오른손 엄지손가락 상처를 항생제로 막으려다 뼈까지 이상이 생겨 수술을 받았다. 그 뒤에도 손가락 문제로 가끔 콘서트를 취소하곤 하였으나, 요즘은 양호한 컨디션으로 연주 생활 중이다.

10월 2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릴 예정인 머레이 페라이어의 피아노 리사이틀 곡목은 지난 3월 런던 바티칸 홀에서 가진 연주회와 프로그램이 동일하여 흥미를 자아낸다. 바흐 프랑스 모음곡 5번,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7번, 브람스 네 개의 소곡 Op.119, 슈만 ‘어린이 정경’, 쇼팽 소품 세 편 등을 선보이는 것. 전부 그가 자신 있어 하는 작품들로 바티칸 홀 리사이틀이 절찬을 받았으므로 충분히 기대해도 좋으리라.


글 _ 이영진
사진 제공 _ 크레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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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진은 자기 아이덴티티가 평생 의사라고 우기는 돌팔이이자 ‘모르는 만큼 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라 믿는 따분한 딜레탕트이다. 고려대 의대 출신. 월간‘객석’에서 이영진의 ‘마이너리티 리포트’ 라는 코너를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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