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오페라단 <가면무도회> : 가면을 쓴 권력, 거짓 없는 사랑
   



[ 2011년 10월호 ]
 
국립오페라단 <가면무도회>
가면을 쓴 권력, 거짓 없는 사랑

2011. 10. 13(목)-16(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회
심리드라마의 대가 베르디의 걸작 오페라 <가면무도회>가 선선한 가을, 관객을 찾아온다.
로맨티스트 국왕 구스타프 역에 정의근과 김중일, 복수에 찬 레나토에 대한민국 최고의 베르디 바리톤 고성현, 비운의 여인 아멜리아에 소프라노 임세경이 노래하는 국립오페라단의 야심찬 무대가 한껏 기대를 모은다..


베르디 중기의 걸작 오페라 <가면무도회(Un Ballo in Maschera)>는 스웨덴 국왕 암살 사건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정면에서 다룬 오페라이다. 이 작품은 소재의 정치적 민감성 때문에 공연 전부터 당국의 심한 검열에 시달려야 했는데, 결국 무대배경이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미국 보스턴으로 바뀌게 된다. 그래서 지금도 초연 당시의 보스턴판과 후일 작곡가의 의도에 맞춰 배경을 스웨덴으로 되돌린 스톡홀름판의 두 가지 버전으로 공연된다. 이번 국립오페라단의 공연은 스톡홀름 버전이다.

정치적 소재 안에 담긴 애절한 로맨스
이 오페라는 실화를 소재로 삼고 있다. 스웨덴의 계몽군주 구스타프 3세는 국민을 위한 선정을 적극적으로 펼쳐 신망이 두터운 왕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의 와중에 기득권을 상실해가던 귀족들의 거센 반발을 사게 된다. 결국 1792년 어느 날, 스톡홀름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가면무도회에 참석한 국왕은 앙카르스트룀이라는 이름의 젊은 백작이 쏜 총에 맞아 숨을 거두고 만다. 소재만 놓고 보면 심각하게만 흘러가는 정치극일 것 같지만, 베르디는 여기에 드라마적 상상력을 불어넣었다. 즉, 레나토 앙카르스트룀 백작의 부인인 아멜리아와 구스타프 국왕이 서로를 흠모하여 몰래 사랑을 키워가고 있었다는 설정이다. 결국 오페라는 권력투쟁이라는 거대한 뼈대 위에, 진실되지만 불안하고 금지된 사랑, 신의와 배신, 음모와 암살이라는 요소가 복합적으로 얽혀 더욱 흥미진진하고 입체적으로 발전해나가게 된다. 심리 드라마의 대가인 베르디다운 날카로운 솜씨다.

오페라는 스웨덴 국왕의 접견실에서 시작된다. 국왕은 다음 날 열릴 가면무도회의 초대손님 명단을 살펴보고 있는데, 거기엔 그가 남몰래 흠모하고 있는 아멜리아의 이름도 들어있다. 그러나 아멜리아는 자신의 최측근 레나토의 부인이다. 국왕은 가장 충성스런 신하의 아내를 사랑하게 된 셈이다. 그는 도덕적 의무감과 자율적인 정념 사이에서 복잡한 심정으로 번민을 거듭한다. 한편 그날 밤 깊은 숲 속에서 국왕과 아멜리아가 운명적으로 조우한다.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숨겨왔던 깊은 애정을 토로하는 뜨거운 2중창을 나눈다. 이때 왕을 호위하기 위해 나타난 레나토가 국왕과 밀회를 즐기던 여인이 자신의 아내임을 발견하고는 극도의 배신감을 느끼며 피의 복수를 맹세한다. 결국 레나토는 다음 날 열린 가면무도회 파티장으로 잠입하여 칼로 구스타프를 찌르고, 무도회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왕은 죽어가면서도 아멜리아에게는 잘못이 없다며 용서와 화해를 호소한다.

국립오페라단의 2011년 시즌 마지막 공연이 될 이번 <가면무도회>는 화려한 캐스팅으로 벌써부터 기대치를 한껏 높이고 있다. 음악을 이끌 지휘자는 웅장한 스케일, 드라마틱하고 대담한 베르디 해석으로 유명한 마르코 발데리이다. 남성적인 기품이 넘치는 이 오페라에 대한 그의 특별한 해석이 다시 한 번 기대되는 순간이다. 연출은 그간 치밀하고 극적인 구성, 풍부하고 다층적인 상징성, 대담한 설정의 논리적인 전개 등으로 유명한 우리 시대의 연출가 장수동이 맡았다. 그는 인물들 간의 심층심리가 날카롭게 대립하는 이 오페라 특유의 복잡한 갈등구조를 명쾌하게 분석하여 베르디 오페라의 뜨거운 인간적 감동을 생생히 전해줄 것이다. 가수진은 역량 있는 한국 성악가들이 총출동한다. 국왕 구스타프 역으로는 유럽 각지 무대에서 최고의 성과를 보여주고 있는 정의근과 2012-13시즌 라 스칼라 극장 전격 데뷔를 앞둔 차세대 스타 김중일이 더블 캐스팅되었다. 레나토 역은 대한민국 최고의 베르디 바리톤으로 손꼽히는 고성현이 노래한다. 한국보다는 오히려 본고장 유럽 무대에서 더 자주 만날 수 있는 그는,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단단한 해석으로 국왕의 심장을 노리는 강인한 백작을 노래할 것이다. 한편 아멜리아 역에는 소프라노 임세경이 출연하여 금지된 사랑의 아픔에 괴로워하는 비련의 여주인공을 노래한다. 아멜리아는 일반 소프라노들이 음악적으로 소화하기 쉽지 않은 드라마틱한 배역이라 그녀에 대한 기대가 남다르다. 구스타프의 죽음을 예언하는 음울한 신비감의 점쟁이 울리카 역에는 콘트랄토 음역까지 자신 있게 소화해내는 메조소프라노 이아경이 출연한다.

<가면무도회>에 등장한 국왕의 정적들은 모두 ‘가면’속에 권력을 향한 추악한 욕망을 감추고 있다. 그러나 구스타프와 아멜리아의 진실한 사랑은 ‘가면’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허위의 욕망과 진실한 사랑간의 극적인 대립을 다룬 휴먼드라마. 오페라 <가면무도회>가 우리를 찾아온다.



글 _ 황지원
photoⓒ 예술의전당 홍보부 사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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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원은 오페라가 주는 매력에 빠져 전 세계의 오페라하우스를 순회하면서 공연을 보고 글을 쓰며 여러 사람들과 공연의 깊은 감동을 나누기를 원하는 오페라 칼럼니스트이다. <문화공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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