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발레단 <로미오와 줄리엣> : 보다 드라마틱한 절정의 사랑!
   



[ 2011년 10월호 ]
 
국립발레단 <로미오와 줄리엣>
보다 드라마틱한 절정의 사랑!

2011. 10. 27(목)-30(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대표적인 레퍼토리인 장-크리스토프 마이요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는 로미오와 줄리엣 뿐만 아니라 로렌스 신부, 부성을 겸비한 마담 캐플릿, 두 대립하는 가문의 젊은이들 티볼트와 머큐쇼 등 작품 속에 등장하는 30여 명의 무용수 모두가 주인공이다. 특히 국립발레단 50년 역사상 최초로 세계적인 마에스트로 정명훈과 서울시립교향악단이 함께 해 이번 무대가 더욱 특별하다. ‘보는’발레만이 아니라 ‘듣는’발레의 즐거움을 기대해본다. 로미오 역에는 김용걸·이동훈이, 줄리엣 역에는 김지영·김주원이 나선다.


국립발레단이 드디어 장-크리스토프 마이요의 <로미오와 줄리엣>을다시 공연한다. 2000년 국립극장 전속단체에서 재단법인으로 새롭게 출발한 국립발레단이 선보인 마이요 버전 <로미오와 줄리엣>은 당시 큰 화제를 모았다. 최태지 단장 취임 이후 러시아 스타일의 고전발레 레퍼토리를 정착시켜온 국립발레단이 동시대 유럽발레를 처음 선보였기 때문이다. 마이요의 현대적인 안무는 관객과 평단의 찬사를 받았고, 국립발레단은 2002년 창립 40주년을 기념해 이 작품을 앙코르 공연하기도 했다. 이후 한국에서는 마이요의 또 다른 작품인 <신데렐라>(2005년, 2009년, 2010년)와 <라 벨르(잠자는 숲 속의 미녀)>(2006년)가 오리지널 또는 라이선스 형태로 공연됐다. 하지만 한국 관객들에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로미오와 줄리엣>은 다시 보고 싶다는 발레 팬들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 9년 만에 다시 공연될 예정이어서 발레 팬들을 들뜨게 만들고 있다.

마이요 버전의 쇼킹한 <로미오와 줄리엣>
마이요는 모나코의 국립발레단이라고 할 수 있는 몬테카를로 발레단을 세계 정상의 발레단으로 올려놓은 인물이다. 1977년 16세의 나이로 로잔 콩쿠르에서 우승한 그는 존 노이마이어가 이끄는 함부르크 발레단의 주역으로 활동하는 등 촉망받는 무용수였다. 하지만 무릎 부상을 당한 23세 때 안무가로 진로를 변경했다. 이후 프랑스 국립안무센터의 하나인 투르 그랑 테아트르 발레단 상임안무가를 거쳐 1993년부터 몬테카를로 발레단 예술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재능을 높이 평가한 모나코의 캐롤라인 공주가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며 그를 초빙했고, 그는 공주의 기대 이상으로 수작들을 잇따라 만들어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마이요가 몬테카를로 발레단에 부임한 지 3년째인 1996년 초연된 작품이다. 창작된 지 15년밖에 안 됐지만 세계 곳곳의 발레단으로부터 레퍼토리로 만들고 싶다는 러브콜이 쇄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 작품을 이토록 빨리 고전의 반열에 올려 놓았을까. 답은 고전발레에 대한 그의 참신한 해석에 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이 새롭다고 해서 매튜 본이나 마츠 에크 같은 안무가들처럼 고전을 패러디하거나 파격적으로 재창조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는 발레의 포인트워크를 굉장히 중시하는 등 고전발레의 원형을 유지하되 불필요한 디베르티스망(볼거리를 위한 춤)을 없애고 드라마를 강화해 원작의 핵심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캐릭터들에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한다. 예를 들어 줄리엣은 초연 당시 마이요가 <줄리엣과 로미오>라고 제목을 고집했을 만큼 극중 비중이 크다. 기존의 지고지순하고 청초한 이미지 대신 적극적이고 성숙한 아름다움을 풍긴다. 자신을 어린애라고 생각하는 유모에게 부풀어 오른 젖가슴을 보여주고, 머뭇거리는 로미오에게 먼저 키스할 정도다. 또 로미오가 티볼트를 죽이고 왔을 때는 그를 때리기도 한다.

캐플릿 부인은 줄리엣의 아버지를 아예 설정하지 않은 마이요 버전에서 모성과 부성, 여성과 남성을 동시에 품은 복합적 존재로 그려진다. 또 2명의 복자를 데리고 다니는 로렌스 신부는 인성과 신성, 선과 악을 상징하는 인물로서 발레 전체의 흐름을 좌우한다. 이 외에 막이 오르면 관객은 처음 15분간 2인무를 추는 두 남녀 무용수를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생각하는데, 여자는 줄리엣이 아니라 로미오가 짝사랑하던 로잘린이다. 셰익스피어의 원작에는 나오지만 여타 작품에서 이름으로만 나오는 로잘린에게 마이요는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마이요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춤 속에서 이들 캐릭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를 이끌어낸다. 첫눈에 반한 로미오와 줄리엣이 손으로 서로를 쓰다듬고 키스를 반복하는 동작은 정말 사랑스럽다. 또한 그는 중요한 장면을 영화의 정지 또는 슬로우 모션처럼 보여주는 연출로 감정을 극대화한다. 로미오가 줄리엣과 비밀 결혼식을 올린 직후 광장에서 친구 머큐쇼를 죽인 티볼트를 뒤쫓아가 교살하는 장면, 줄리엣이 죽었다고 생각한 로미오가 줄리엣이 누운 단의 모서리에 스스로 찔러 죽는 장면 등은 어떤 <로미오와 줄리엣>보다 드라마틱하다.

새로운 캐릭터 설정과 감각적인 연출에 대해 마이요는 “내가 안무할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인간 본연의 삶이다. 특히 휴대전화로 동영상을 볼 수 있는 시대에 사는 사람들을 발레 공연에 오게 하려면 현실감각이 작품에 반영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나는 발레를 좋은 발레와 나쁜 발레로 구분하는데, 좋은 발레는 지루하지 않은 것이고 나쁜 발레는 지루한 것”이라며 “나쁜 발레를 보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덧붙였다.

마이요의 안무와 연출을 완성시키는 요소로 무대 세트, 의상, 조명 디자인의 역할을 꼽지 않을 수 없다. 마이요는 자신이 안무한 거의 모든 작품에서 피뇽-에른스트(무대), 제롬 카플랑(의상), 도미니크 드리요(조명)와 함께 작업한다. 이들은 막을 전환하고 무대 세트를 교체하는 기존의 <로미오와 줄리엣>과 달리 두 개의 벽, 위아래로 이동하는 긴패널, 상황에 따라 침대와 무덤의 역할을 하는 삼각대를 이용해 함축적인 무대를 보여주는데, 배경막에 다양한 색깔의 조명을 투영해 극의 분위기를 만든다. 특히 피뇽-어니스트의 무대는 간결하지만 작품의 성격을 훌륭하게 함축하고 있어 “장소가 역할을 결정한다”라는 평가를 들을 정도다. 여기에 프로코피예프의 음악도 이 작품의 매력을 배가한다. 마이요는 이 작품을 만들게 된 이유가 프로코피예프 음악에서 느낀 감흥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을 듣다 보면 모든 이야기가 실제로 눈앞에 그림처럼 펼쳐진다”라면서 “내 발레에는 터칭(touching)이 많은데, 관객들도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을 통해서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명훈 지휘, 김지영&김주원의 줄리엣
사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는 셰익스피어 원작의 드라마틱한 면때문에 안무자들을 늘 유혹한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발레로 만들어진 것은 1938년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이 나온 이후다. 전 세계적으로 80여 개에 이르는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 가운데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으로 만들어진 것이 50여 개, 차이콥스키와 베를리오즈의 교향시로 안무된 것이 각각 10여 개, 그리고 각각 다른 창작음악으로 만들어진 것이 10여 개인 데서 알 수 있듯,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은 압도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다. 정명훈이 서울시향을 이끌고 국립발레단의 이번 공연 반주를 맡은 것도 프로코피예프이기 때문이다. 정명훈은 그동안 오페라 지휘는 즐겨 했지만 발레는 1980년대 파리오페라발레단에서 스트라빈스키의 <불의 제전> 등 2~3회 정도밖에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지휘자에게 발레는 교향곡이나 오페라에 비해 박자의 구속이 훨씬 강하기 때문에 재미가 덜한 탓이다. 하지만 정명훈은 연주회용 오케스트라곡으로서 프로코피예프의 <로미오와 줄리엣> 모음곡을 자주 연주해왔다. 1993년 그가 네덜란드 로열 콘세르트헤보와 연주한 <로미오와 줄리엣> 음반은 명반으로 꼽히기도 했다. 이번에 그가 국립발레단과 만나 어떤 소리를 만들어낼지 발레팬은 물론 음악팬들
도 기대를 품고 있다.

한편 이번 공연에서 줄리엣 역으로 더블 캐스팅된 국립발레단의 두 프리마 발레리나 김주원과 김지영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도 관심이다. 이번에 마이요를 대신해 트레이너로서 한국을 찾은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 베르니스 코피에터즈와 조안무 조이아 마살라는 국립발레단 전체 단원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치른 결과 두 사람을 줄리엣으로 낙점했다. 두 사람이 줄리엣 역으로 동시에 캐스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작품이 2000년 한국에서 초연됐을 때 줄리엣은 김지영이 혼자 맡았었다. 당시 김주원도 줄리엣에 캐스팅됐었지만 상대역이었던 이원국의 사정으로 김지영-김용걸의 원 캐스트로 가게 됐다. 그리고 김주원은 줄리엣의 엄마인 캐플릿 부인 역으로 출연했었다. 2년 뒤 국립발레단이 이 작품을 앙코르 공연할 때는 김지영이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에 진출한 뒤라서 김주원과 볼쇼이 발레단의 한국 무용수 배주윤이 더블캐스팅됐었다. 오랜만에 이 작품에 출연하게 된 두 사람은 남다른 감회를 드러냈다. 특히 이번에 줄리엣과 캐플릿 부인을 번갈아가며 연기하게 된 김주원은 “초연 당시 줄리엣을 하지 못했던 아쉬움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이번에 베르니스가 내게두 역할을 다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을 때 정말 기뻤다. 몬테카를로 발레단에서 두 가지 역할을 다 하는 것은 베르니스밖에 없다고 한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줄리엣은 자심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지만 캐플릿 부인은 감정을 자제해야 한다. 상반된 두 역할을 매일 바꿔가며 연기하는 것이 너무 재밌다”라고 말했다.

이번에 내한한 베르니스 코피에터즈는 마이요의 뮤즈로 불리는 발레리나로, 몬테카를로 발레단에서 마이요가 만든 작품 대부분이 그녀를 주인공으로 초연됐다. 키가 180센티미터나 되고 튼튼한 골격과 근육질의 몸매, 발레리나치곤 큰 가슴을 가지고 있어서 가냘프고 여린 발레리나의 일반적 이미지와는 정반대다. 마이요는 그녀에 대해 “여성성과 남성성을 동시에 지닌 무용수로 다른 무용수와 비교할 수 없을만큼 독특하다”라면서 “열정과 에너지가 넘치는 그녀는 21세기 발레리나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다”라고 극찬한 바 있다. 마이요 버전의 줄리엣이 성숙하고 적극적인 성격을 띠는 것은 베르니스에서 기인한다.

11년 만에 이 작품에 출연하는 김지영은 “한국 초연 당시 어렸기 때문에 그저 열심히만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에 다시 줄리엣 역할을 준비하면서 보니 당시 보이지 않았던 부분이 많이 보인다. 마이요의 작품은 어린 무용수보다는 인생경험이 어느 정도 있는 나이든 무용수에게 더 어울리는데, 이번에 좀더 성숙해진 나 자신의 줄리엣을 보여주고 싶다”라고 말했다. 국립발레단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10월 27일부터 30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다. 줄리엣역의 김주원과 김지영 외에 로미오 역의 김용걸과 이동훈 등이 출연한다.



글 _ 이영진
사진 제공 _ 예술의전당 음악사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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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진은 자기 아이덴티티가 평생 의사라고 우기는 돌팔이이자 ‘모르는 만큼 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라 믿는 따분한 딜레탕트이다. 고려대 의대 출신. 월간 ‘객석’에서 ‘이영진의 마이너리티 리포트’ 라는 코너를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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