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대로 알고 재미있게 구경하기
   

김선희 (예술의전당 어린이 관극회원 어머니)

[ 2005년 02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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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알고 재미있게 구경하기

미술관에 오실 때는 편안한 복장에 간단한 필기도구를 챙겨 주세요
부피가 큰 가방이나 우산은 미술관 보관함에 맡겨주세요
전시장에서도 핸드폰을 꺼주세요
사진기의 플래시는 작품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힙니다
작품을 손으로 직접 만지는 행위는 절대 금물입니다
천천히, 또는 1-2분간 작품의 전체와 부분을 고루 살펴보세요
자유롭게 한 바퀴 돌아 본 후 관심이 있는 작품을 집중적으로 살펴보세요
깊이 있는 감상을 원한다면 전시를 위해 발행된 도록을 구입하는 것도 좋습니다
펜과 메모지를 준비해서 기억하고 싶은 그림과 느낌을 기록하는 습관을 갖도록 합시다


십 년 전이었던가, 아이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필자는 아니 엄마는 아이와 함께 하고 싶은 일이 무척 많았다. 멋지게 차려입고 오페라도 보고 음악회도 가고, 우아한 걸음으로 갤러리를 돌며 미술 작품을 감상하면서 아이와 함께 속삭이는 그런 모습을 상상만해도 마냥 행복했다.
하지만 이런 초보 엄마의 기대는 36개월 된 아이를 들춰 업고 집을 나서던 그날, 산산이 부서졌다. 공연장에서 ‘미취학 아동 관람 불가’라는 문구를 확인하지 않은 덕분에 약간의 수수료를 지불하고 입장권을 환불했으며, 그나마 어렵게 들어간 미술관에서는 우아한 걸음걸이 대신 어른의 눈높이에 맞춰진 키높은 작품들을 하나라도 더 보여주겠다는 의지로 아이를 안고 전시장을 한 바퀴를 둘러본 후에 “아이고, 엄마야!” 하며 주저앉고 말았다. 하이힐과 스커트 그리고 적당히(?) 무거운 아이 덕분에 초보 엄마는 엄청 고생을 했지만 그래도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기 전까지 우리들의 문화활동은 대부분 미술관에서 이루어졌다. 다행히도 미술관 앞에서는 표를 사고도 입장하지 못한 경우가 없었던 것이다. 행여 있더라도 우리 모녀가 잘 피해 다닌 것인가?
드디어 초등학생. 공연장을 자유롭게 드나들게 되었지만 아이와 필자는 어린시절의 추억 때문인지 요즘도 주말이면 여전히 인사동이나 서울 시내의 전시장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고 있다. 볼거리와 놀거리가 많은 겨울방학이다보니 전시회도 다양하다. 재미있고 신나는 ‘미술관에서 제대로 노는’ 노하우를 공개한다.

초보 엄마가 꿈꾸던 멋진 옷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깔끔한 복장으로 나서는 필자와는 달리 아이는 이것저것 준비물 챙기기에 분주하다. 메모하기 쉬운 수첩 하나와 연필 두 자루 그리고 색연필 등. 언제부터인가 아이는 공연장이나 전시장으로 향할 때면 조그마한 가방에 이것저것 소도구들을 챙긴다. 특히, 여름 장마철이나 겨울에 눈이라도 내릴 때면 작고 가벼운 삼단 우산 또한 꼭 챙기는 필수품이다. 가끔 수첩을 꺼내 아이와 함께한 시간들을 떠올리며 하나하나 읽어 보면 엄마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재미난 생각을 발견하기도 하고 때론 엉뚱하기도 한 발상을 읽으며 웃는다. 이렇게 여기저기 끄적여 놓은 오늘의 짧은 감상소감은 훗날 또 다른 즐거움을 만들어 내는 이벤트가 되기도 한다.

드디어 도착한 전시장, 아이와 필자는 주머니를 뒤적여 핸드폰을 꺼내 전원을 끄고 전시장에 들어선다. 즐거운 마음으로 전시장을 둘러보다가도 여기저기에서 울려대는 핸드폰의 다양한 화음을 듣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뻔뻔(?)스러우리만치 커다란 목소리로 전시장 안에서 통화를 하고 있는 사람을 마냥 쳐다보고만 있는 엄마와는 달리 아이는 그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무어라 속삭이고 웃으며 돌아선다. 아이의 어깨 너머로 슬그머니 전원을 끄며 멋쩍은 표정을 짓고 있는 아주머니가 살짝 보인다.
“뭐라고 한거야?” “그냥, 기본을 얘기 했지 뭐.” 조용한 전시장에서 막무가내로 울려대는 핸드폰 소리가 어린 아이의 귀에도 거슬렸나보다. 엄마는 슬그머니 주머니 속의 핸드폰을 꺼내 다시 한 번 전원을 확인한 후에야 조용히 아이를 따라간다.

전시장 도우미 언니에게 무언가를 물어보던 아이가 작은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낸다. 아마도 이번 전시는 사진 촬영이 가능한 전시인가보다. 가벼운 걸음걸이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멈춰 서서는 카메라 셔터를 누르곤 하는 아이가 뒤에서 따라가는 엄마를 보고 “엄마, 사진 촬영 가능하다고 했어요.” 라며 선수를 친다.
전시장에서의 사진 촬영은 금지된 사항이다. 다른 여러 가지 이유도 있겠지만 사진기에서 터저 나오는 플래시 빛이 때론 작품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히기도 하고 저작권과 관련된 문제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가능하면 도록을 산다. 아니 꼭 산다고 해야 할 것이다.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도와줄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한 시간들을 책꽂이에 꽂아 두었다가 어느 날 다시 꺼내 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한다면 아이의 학교 숙제나 자료조사에도 요긴하게 쓰인다.

얼마 전 찾은 예술의전당의 「유니버설 디자인전」이나 「갖고 싶은 의자전」은 다행히(?) 만져도 보고 앉아도 볼 수 있는 작품들이 있어서 아이가 무척 좋아했다. 눈으로만 감상할 때는 다소 심심해하기도 하지만 온몸으로 즐기는 전시장에서 아이의 오감五感은 잠시도 쉴 틈 없이 바쁘다. 엄마는 느긋하게 전시장을 배회한다. 그 느긋함이 쑥스러움으로 보였는지 아이는 엄마도 앉아보라고 팔을 잡아 끌어 당긴다. 그리고는 마치 자신의 작품인양 “어때, 편하지, 색깔 예쁘지 않아, 엄마?” 라며 속삭인다.
모처럼 아이가 신나하는 전시장에서는 자연히 관람시간 또한 길어진다. 아이들은 호기심이 생기고 즐거움을 주는 대상을 한 번 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혹시나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노라면 탐구하며 즐기는 시간이 아주 길어진다. 그럴 때면 엄마는 한 발 물러서서 느긋하게 아이의 관람을 감상한다. 그저 즐겁기만을 바라면서.

우리 모녀가 지금까지 지치지 않고 전시장을 찾아다닐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아마도 관람객이 많지 않은 시간대를 선택하여 전시장을 찾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방학 때면 대형 전시장 매표소 앞에서 관람권을 구입하기 위해 길게 늘어선 인파. 그리고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기도 전에 뒷사람에게 밀려 오로지 전진만 해야했다면 아이보다 엄마가 먼저 떨어져 나갔을 것이다. 힘겹게 찾아나선 미술관에서 비록 조그마한 감동이라도 마음 속에 담아 가기 위해서는 무작정 집을 나서기 보다는 약간의 사전 조사가 필요하다. 전시회와 관련된 정보를 얻고 전시장 주변의 먹거리나 다른 자료들을 얻는 것 자체가 이미 관람 행동의 시작이다. 그 다음엔 우아하게 작품을 감상하면 되는 것이다.

미술 관람에 아니 전시된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에 정답이란 없다. 누구나 자신만의 상상의 나래를 펴고 화폭 속으로 들어가면 되는 것이다. 이보다 더 쉬운 여행이 어디 있을까? 무엇이든 처음 한 번이 어렵다. 그리고 그 한 번 또한 중요하다. 무작정 공연장이나 전시장에 아이들만 몰아 넣을 것이 아니라 함께 관람하면서 관람 예절을 조금씩 가르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진정으로 우아하게 예술을 즐기는 내 아이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글 : 김선희 (예술의전당 어린이 관극회원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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