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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Special Exhibiton 31: DASAN, JEONG YAK-YONG
Period 2012.06.16(SAT) - 2012.07.22(SUN)
Time 11:00
Venue Seoul Calligraphy Art Museum
Tickets Adult 5,000won / Student 3,000won
Discount for SAC Members 3,000 won discount Gold 4ticket/person, Blue 2tickets/person
 
Admission For All Ages
 
Running Time min.
 
Inquiries 02)580-1300
 
Booking Performance : http://www.sacticket.co.kr/SacHome/perform/detail?searchSeq=12216
Exhibition : http://www.sacticket.co.kr/SacHome/exhibit/detail?searchSeq=12216
 
Information


Jeong Yak-Yong, also known as Dasan (meaning “Tea Mountain”), is one of Joseon’s most renowned scholars, produced a vast number of influential books on a wide range of areas in the later Joseon Dynasty (18th century). To celebrate the 250th anniversary of the great thinker’s birth, Seoul Arts Center hosts special exhibition with his books, pictures, drawings and relics.


Mokminsimseo (The Mind of the Governing the People)
Mokminsimseo

Yeolcho Sansudo (geographical picture of hills and water)

Yeolcho Sansudo





In Korean

[특강일정]
 
*다산학 시민강좌 - 천명天命, 다산의 하늘
전시기간 중 매주 토 14:00-17:00 / 예술의전당 아카데미홀(오페라극장 4층) / 무료,선착순 입장

 

-6.16 다산의 부활 (김영호, 단국대 석좌교수 / 전 산업자원부장관)

 

-6.23 다산의 상서(尙書)연구와 경세학 (김문식, 단국대 사학과교수)

        다산과 괴테 ; 동서문명의 교차로 (최종고, 서울대 법대교수)

 

-6.30 다산학과 다산학파 (임형택, 성균관대 한문학과 명예교수)

        다산사상에 있어 상제(上帝)문제 (이동환, 한국고전번역원장)

 

-7.7  왜 지금 다산인가 (도올 김용옥, 철학자)

 

-7.14 다산의 생애와 사상 (박석무, 다산연구소장)

        정약용과 18세기 동아시아 정치철학비교 (백민정, 연세대 철학과교수)

 

-7.21 다산의 교육관과 교육활동 (정순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주역사전(周易四箋)에 쏟은 다산의 열정 (방인, 경북대 철학과교수)

 
[체험교실]
 
*주말 어린이서예박물관 체험교실 [만화로 그리는 목민심서]
전시 중 매주 토·일 14:00 - 16:00 /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2F) 실기교실

참가자격/수강료 : 초등학교 재학생(선착순25명) / 무료

 
[전시소개]
 
《목민심서》《흠흠신서》《중용강의보》등 다산가장본(茶山家藏本) 친필저술 한자리에서 최초공개
이번 전시에서는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 - 1836)의 학문과 사상을 밝히는 친필 저술, 시(詩)·문(文)·서(書)·화(畵)등 문예작품, 학맥·가계·사우·문인 등의 교유관계 유물과 자료 150여점이 공개된다. 《목민심서》,《흠흠신서》,《중용강의보》, 《악서고존》등 10여건 30여점은 다산이 직접 소장하였던 가장본으로 1925년 을축(乙丑)대홍수로 인해 다산 생가에서 흩어진 이래 최초로 한자리에서 공개되는 유물이다. 이번 공개 유물은 개인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된 유물을 한자리에 모은 것이다. 특히 다산가장본《목민심서》는 1902년 광문사에서 연활자로 찍은 책의 저본이 된 정고본(定稿本)이다.

 

다산의 전모를 보는 사상 초유의 전시

이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는 탄생 250주년을 기해 경학(經學)·경세학(經世學) 등의 저술과 시문과 서화 등 문예유물, 그리고 교유관계 인물을 통해 다산의 전모를 보는 사상 초유의 전시다. 지금까지 다산은 시대와 사회 그리고 보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실학(實學)의 집대성자(集大成者)인가 하면 목민(牧民)의 사표로서 경세가(輕世家)이기도 하였고, 개혁사상가(改革思想家)인 동시에 과학자·건축가로서 실용주의(實用主義)자였으며, 저술가(著述家), 교육자(敎育者), 천주교인(天主敎人), 문인예술가(文人藝術家)등의 다양한 관점에서 그려지고 이야기되어 왔다. 하지만 이 모두를 아우르는 다산의 전체상에 대한 통찰은 아직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천명(天命)’을 화두로 다산의 ‘전체상’을 그려내는 것이 전시목적

지금까지 근 100년간의 2,500여 편의 논문을 헤아리는 많은 연구에도 불구하고 워낙 방대하고 깊고 높은 학문과 사상세계를 지닌 다산이라는 인물을 한마디로 정의 하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요컨대 ‘천명(天命)’을 화두로 다산의 전체상(全體像)을 문제 삼는 이번 전시는, 앞으로 실물을 통한 다산연구는 물론 다산의 인간적인 면모에 대한 이해의 새로운 전기가 될 것이다.

 

실학의 집대성자 목민관... 관점에 따라 다양한 인물 다산

그렇다면 왜 지금 전체상으로서 다산인가? 2012 한국사회는 단군 이래 최고의 번영을 누린다고 하지만 그 만큼 문제도 많다. 통일과 경제민주화는 가장 큰 과제다. 이런 현실의 당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역사에서 찾아낸다면 다산인 것이다. 위당 정인보는 ‘다산(茶山) 1인에 대한 연구는 곧 조선사(朝鮮史)의 연구요, 조선 근세사상의 연구요, 조선 심혼(心魂)의 명예(明銳) 내지 전 조선의 성쇠존망에 대한 연구다’라고 했다. 이러한 다산은 이미 개화기나 일제강점기는 물론 근대화 과정에서 ‘민족의 태양’으로 꾸준히 재해석 되어 왔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지금 입버릇처럼 ‘다산’, ‘다산’ 하지만 다산의 실체를 정확하게 잘 모른다. 앞서 본대로 혹자는 ‘관리들의 학정을 고발한 목민관이다, 실학의 집대성자다, 천주교도다 아니다, 그림도 그렸고 시도 많이 지은 예술가이자 공학도다’라고 한다. 요컨대 보는 사람마다 다산이 다르다.

 

‘강진’과 ‘열수’ - 강진유배 18년과 열수해배 18년

다산에 대한 편애는 개인의 실존문제에 가서도 강진유배로 다산이 우리에게 너무 잘 알려져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확인된다. 하지만 다산은 조선후기 ‘강진’과 ‘열수’라는 시공(時空)을 무대로 사상과 종교의 문제로 인해 유배(流配)와 해배(解配)의 삶을 살았다. 어떤 측면에서는 열수에서의 해배의 삶은 다산에게 있어 강진 유배의 삶과 학문적 성취를 되새김질하고 농익게 만들어 내는 때인 만큼 유배만큼 중요하다 할 것이다. 이것은 마치 예술적인 입장에서는 추사의 제주유배 8년보다 추사체가 완성되는 해배이후 63세부터 71세까지 용상, 북청, 과천시절이 더 중요하게 간주되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 

 

실학(實學)의 카테고리를 넘어

다산을 실학(實學)의 집대성자라 하지만 실학이 정확하게 어떤 의미이며, 또한 경학(經學)의 방대한 역사나 서학(西學)과 불교(佛敎)와 어떤 관계망 속에서 규정되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규명해내고 있지 못한 현실이기도 하다. 예컨대 다산이 조선전래의 이기(理氣)중심의 우주관을 관념(觀念)에 매몰된 것으로 비판하고 현실(現實)의 문제해결에 눈을 돌렸지만 관념자체를 떠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본질적으로 이기가 아니라 상제(上帝)라는 입장에서 세상의 근원을 탐색해갔다. 허학(虛學)의 상대개념으로서 실학이 아닌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학계에서 어느 정도 정리는 되고 있지만 실학이 서구과학기술과 같은 실용학문인가, 그래서 도학(道學)과 무관한 것인가, 아니면 도학의 비판적 계승인가, 공맹유학과 그 이전의 사상과는 어떤 관계인가하는 것들을 일반인들이 이해하기는 어렵다.

 

자유분방하고 다정다감한 인간 다산

대중들에게는 더 더욱 중요한 관심사이기도 하지만 이런 위대한 철인이나 냉철한 사상가로서 다산의 일상과 인간적인 면모는 어떤가도 상대적으로 덜 조명되었다. 예컨대 강진유배시절 민중의 참상을 시로 고발하면서도 초당의 사계를 노래하는 사람이 다산이다. 이것은 추사가 제주도에서, 원교는 신지도에서 현실 넘어 있는 서화(書畵)로 유배의 삶을 맞바꾼 것과는 대조적이다.

 

천명(天命), 개혁사상과 실용주의를 관통하다

다시 말하면 다산 정약용(1762 - 1836)은 경학(經學)과 경세학(經世學)을 하나로 꿴 사상가(思想家)이자 정치경제학자(政治經濟學者)자다. 또 문인(文人)이자 예술가(藝術家)다. 그 성향은 개혁(改革)을 넘어 혁명적(革命的)이기 까지 하면서도 지극히 실용주의적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다산의 생각과 행동, 사유(思惟)와 실천(實踐)을 지배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런 인간 다산은 누구이고, 그를 둘러싼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정약용丁若鏞250 : 천명(天命), 다산의 하늘전>을 타이틀로 내건 이번 전시는 ‘천명(天命)’을 화두로 이러한 물음에 답하면서 다산의 ‘전체상(全體像)’을 그려내고자 하였다.

 

이기(理氣)에서 상제(上帝)로

다산은 천(天)을 유형천(有形天)과 주재천(主宰天)·역리천(易理天)으로 구분하고 주재천에의 믿음을 강조하였다. 다시 말하면 주자의 천리설(天理說)과 이기설(理氣說)을 부정하고 천명이 상제(上帝)의 의지라는  입장을 취하였다. 천명(天命)을 정치적으로는 인심(人心)으로, 윤리적으로는 정명(正命)으로 보아 ‘백성을 위한 군자의 사명’을 강조하였다. 재삼 언급되지만 다산 탄생 250년을 기념하는 이번 전시는 다산의 저술 시문서화 유물은 물론 가계·교유관계 인물까지 총 망라하여 집대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상 초유의 전시다. 물론 1936년 다산 서거 100주년을 기해 《여유당전서》를 편찬해냈지만 실제 유물로 다산의 전모를 조망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천명(天命)’을 코드로 다산의 학문·사상과 문예, 인간적인 면모에 대한 통찰을 실제유물로 가능케 함으로써 다산의 전체상을 그려낼 수 있게 된 계기가 마련된 셈이다.

 

[전시구성]

 

Ⅰ. 이기(理氣)에서 상제(上帝)로 : 저술著述로 보는 다산의 학문과 사상
Ⅱ. 다산초당 - ‘신아지구방(新我之舊邦)’의 설계센터 

Ⅲ. 문예(文藝)로 보는 ‘인간’ 다산 : 시詩·문文·서書·화畵,

Ⅳ. 다산과 사람들 : 학맥學脈·가계家系·교유交遊·문인門人

 

[주요전시 작품]

 

이번 전시에서는 총 150여점이 공개된다. 다산친필을 위주로 주요작품을 보면 다음과 같다.
 

▲《상례사전(喪禮四箋)(8책)》,《사암경집(俟菴經集)(2책)》,《역사전(易四箋)(1책)》, 《목민심서(牧民心書)(14책)》《여유당집(與猶堂集)(18책)》등 (이상 사상·학문관련 저술)

 

▲《다산사경첩》,《수신설》,《현진자설》,《사언시(6곡병)》,《매조도》,《산수도(4점)》, 《죽란시사첩》등 (이상 ‘시·문·서·화 관련 작품)

 

▲ 김정희작 <노규황량사>,《정황계첩》. 윤정기작《동환록》등 (이상 ‘교유관계 및 제자들’의 필적)

 

▲《증원필첩》,《현친유묵》(이상 ‘가계 및 학맥관계’유물)


상제(上帝)로서 천(天), 조선의 사유세계를 뒤집다
다시 말하면 다산은 당시까지 조선 사람들의 사유세계를 지배해오던 천(天)에 대한 생각을 뒤집었던 것이다. 우주 만물의 근원으로서 ‘천(天)’은 주자가 말하는 ‘리(理)’가 아니라 상제(上帝)라는 것이다. 다산은 당시 주자학을 절대시하여 이기설(理氣說)·예론(禮論) 등의 논쟁에만 골몰하던 학계의 현실을 개탄하고 경세치용(經世致用)의 실질적인 학문을 위해 한대 이후의 오도된 유학(儒學)을 거부하고, 공맹의 원시유학, 즉 수사학(洙泗學)으로 돌아가 유학의 본질을 파헤쳐 후인에 의하여 왜곡 날조된 이론을 바로 잡으려고 하였다. 이와 같이 다산이 천(天)에 대한 사유를 근원으로 되돌리는 계기는 서학(書學), 즉 천주교와 서양의 과학기술을 통해서였고, 그 해답은 결국 공맹의 수사학의 재해석에서 구해낸 것이다. 즉 다산의 하늘은 상제로서의 천과 물질내지는 자연으로서 ‘하늘’은 별개로 간주하는 것이다. 참고로 다산은 큰형의 처남이며 여덟 살 위인 이벽과 친하게 지내면서 학문으로 명성이 높은 이가환과 매부 이승훈을 만나 서학에 심취하였다. 이승훈은 조선에서 최초로 천주교회에서 세례를 받았고, 이가환은 이승훈의 외삼촌이자 성호 이익(1629~1690)의 종손으로 당시 성호학풍을 계승하는 중심인물이었다. 다시 말하면 성리학(性理學)에서는 천(天)은 우주만물(宇宙萬物)의 근원으로서 태극(太極)이고, 그 운행원리로서 리(理)이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의 본성(本性)과 같다고 본다. 그래서 성리학(性理學)이고 물아일체(物我一體)인데, 이런 맥락에서 인간과 자연의 경계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다산은 인성론(人性論)에 있어 인간의 본성은 기호(嗜好)라는 성기호설(性嗜好說)을 주장하고, 사람에게는 도의지성(道義之性)과 금수지성(禽獸之性)의 양성(兩性)이 있음을 밝혀 이들 양자간의 갈등을 인정하였다.
 
혼자서하는 일이라도 삼가하고 삼가라, 신독(愼獨)
하지만 다산이 생각할 때 천인(天人)관계에 있어 주자의 이런 관점은 모호하거나 두루 뭉실하기가 짝이 없는 것이다. 상제(上帝)로서 다산의 천(天)은 인격신(人格神)이다. 이것을 다산은 주자학을 넘어 수사학, 즉 원시공맹유학으로 거슬러 가서 확인해 낸다. 그래서 수기(修己)로서 다산의 신독(愼獨)은 상제가 내 마음속을 내려보고 있기 때문에 ‘혼자서하는 일이라도’ 삼가고 삼가야 한다는 지점에서 재해석되고 이해되는 것이다. 신독은 결코 ‘혼자 있을 때’ 삼가라는 뜻이 아니라는 것이 다산의 생각이다.
 
‘열수학(洌水學)’으로서 다산학
지금까지 다산은 여섯 개 정도의 서로 다른 초상화의 존재나 여러 갈래의 연구 성과가 말해주듯 시대와 사회,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제각각 그려지고 이해되어왔다. 하지만 이번 전시를 통해 다산에 대한 전체적인 통찰이 가능케 된 것이다. 이로서 드러나는 다산 사유의 핵심으로서 상제는 서학(西學)과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해결을 위해 다산은 주자학(朱子學)을 비판적으로 졸업하고, 수사학의 재해석에서 해답을 구해내고 있는 것이다. 경세론 측면에서 이러한 사상을 토대로 낡은 조선을 개혁하고 새로운 세계를 기획 설계해내고 있는 다산은 이미 공맹 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은 앞으로 과제가 되겠지만 ‘열수학(洌水學)’으로서 다산학의 논의를 동서가 하나 되는 사상사적 지점에서 가능케 하고 있다.
 
문예(文藝)로 보는 인간 다산
그렇다면 이러한 다산은 어떤 사람일까. 경학(經學) 경세학 등 182책 503권이 넘는 방대한 저술에다 인정사정없이 탐관오리(貪官汚吏)를 고발하는 목민관(牧民官)으로서 다산은 논리와 이성으로 무장한 공부밖에 모르는 차가운 사람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것이 인간 다산의 전체적인 모습은 아니다. 오히려 문예가 증언하는 다산은 자유분방한가하면 다정다감(多情多感)한 기질을 소유한 사람이다. 예컨대 36세 때인 1797년 여름 어느 날, 다산은 근무지를 무단이탈한다. 조정의 휴가결재 없이는 도성을 못 나간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는 그다. 공무상 피치 못 할 사정도 아니다. 알고 보니 약전·약종 형님, 친척들과 고향 소내[초천苕川]에서 고기를 잡아 탕을 해먹고, 천진암에서 ‘술 한 잔에 시 한 수를 읊으며’ 날을 보내다가 사흘이 지나서야 돌아온 것이다. 이때 지은 시가 20수, 고사리·두릅 등 먹은 산나물이 56종이다.(유천진암기). 딱딱한 목민관 이미지와는 달리 이 정도면 다분히 자유분방한 기질에다 다산의 풍류(風流)가 보통이 아님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자유분방한, 다정다감한 기질의 소유자
문예가 증언하는 다산은 자유분방한가하면 다정다감한 기질의 소유자다. 제자들이 ‘농묵초서(濃墨草書)를 조금만 덜 했더라면 도학(道學)이 더 높아 졌을 것이다’고 증언하고 있는 퇴계 이황을 보는 듯 하다. 하지만 다산의 글씨는 해서나 행초서나 흐트러짐이 없는 ‘퇴필(退筆)’의 엄정 단아한 짜임새와 미감과는 다르다. 굵고 가늘기가 뚜렷한 명조체(明朝體)의 활자(活字)골격과 미감이 다산의 해서라면 행초서에서는 자유분방한 다산의 기질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특히 뚜렷한 태세변화에다 변화불측의 해행으로 구사된 글자 짜임새는 다산만의 독자적인 경지다. 물론 이러한 행초서 중심의 다산글씨의 맥락 한줄기는 원교 이광사에게서 찾아진다. 원교는 강진과 가까운 신지도에서 23년간 유배를 살면서 글씨만 쓰다 생을 마감한 사람인데, 소위 ‘동국진체’맥락을 거슬러 가면 그 시발점인 공재 윤두서와 옥동 이서와 맞닿아있다. 다산은 글씨에 관한한 원교를 통해 외증조부인 공재, 같은 성호학맥인 옥동과 삼중으로 거슬러 만나는 셈이다.
 
자연을 사랑한 조경설계사 건축가를 넘어 
한편 다정다감한 다산의 성정은 유명한 고려대 박물관 소장 <매조도(梅鳥圖)>에 잘 그려져 있다. 향기 만발하는 정매(庭梅)에 앉은 한 쌍의 새에게 둥지를 틀어 집을 삼기를 권하는 장면이 시집가는 딸의 행복을 비는 아버지와 오버랩 되면서 감옥 아닌 감옥에 갇혀 옴짝달싹도 못하는 다산의 애틋함이 배가 되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죽음을 대신한 유배형의 현장을 ‘다조’, ‘약천(藥泉)’, ‘정석(丁石)’, ‘연지석가산(蓮池石假山)’으로 설계해 다산초당을 지어내는 지점은 그가 얼마나 자연을 사랑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현실고발 참여시인
그런데 문예가 증언하는 인간 다산은 그냥 음풍농월(吟風弄月)만을 일삼는 시인이나 문인서화가 조경전문가 이상의 지점에 있다. 요컨대 초당은 다산이 꿈꾼 ‘신아지구방(新我之舊邦 : 낡은 조선을 새롭게 한다)’의 설계사무소인 셈이다.  ‘다조’의 솔바람소리[松風]는 그냥 선정(禪定)으로 들어가는 찻물 끓는 소리가 아니라 다산에게는 그 넘어 에서 들려오는 ‘민중의 울부짖음[(天鼓, 천둥소리)]인 것이다. 다산이 강진들판에서 자행되는 탐학(貪虐)현장을 “…내 살가죽 네가 벗기고 / 내 뼈까지 부순 네놈…”(<전가기사>)으로 고발하는 지점은 감사·수령·아전과 같은 목민관을 적으로 규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미 ‘백성을 하늘로 여긴’ 유교정치의 종말을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차를 달이며 민중의 아픔에 귀 기울이는 다산시의 이런 현실참여는 그림에서는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문인(文人)의 여기로 그려진 그의 그림에서 풍자나 고발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이다. 응당 다산의 그림 소재는 조선의 여느 문인과 같은 매화 새 산수와 같은 것이다. 하지만 채색과 흰색호분으로 새의 부리와 꽃송이를 선명하게 담아내는 <매조도>의 사실적인 묘사기법은 물론 부인이 보내준 치마를 화폭으로 바꿔 시집가는 딸을 생각하는 구체적이기도 하고 현실적인 시각은 다산에게서 특히 두드러지는 점이다. 여기서 다산그림은 실학적(實學的)인 사실주의 화풍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실학적 사실주의 화풍의 실마리
요컨대 다산의 매화는 더 이상 퇴계가 형님으로 불렀던 군자(君子)가 아니라 그냥 뜰의 나무다. 이것은 동시대 추사가 <불이선란도>에서 난을 자신으로 동일시하면서 유(儒)·불(佛)의 불이선(不二禪)과 성중천(性中天)의 경계를 넘나드는 세계로 노래한 것과도 다르다. 이런 측면에서 다 같은 경학자의 글씨·그림·시라도 동시대 다산과 추사는 물론 조선중기 퇴계와 후기 다산이 다른 것이다. 요컨대 문예로 보는 다산의 인간상은 이지(理智)와 감성(感性)이 하나 되는 지점에서 그려진다고 하겠다.


[주요작품]
 
목민심서 초고본 14책
다산의 500여권의 저작 중 하나를 꼽으라면 다산초당 ‘송풍각(松風閣)’에서 저술된 《목민심서》를 거론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다산 자신도 ‘육경사서’와 ‘일표이서’로 내외를 갖추었다고 술회하고 있듯이 《목민심서》는 다산의 불후의 명저다. 이번에 공개되는 《목민심서》는 1902년 광문사가 연활자로 찍어낸《목민심서》의 정고본이다. 물론 광문사판은 지금까지 발행된《목민심서》의 기준이 되고 있다. 이 밖에도 다산의 경학연구의 본모습을 보여주는《상례사전(8책)》,《사암경집(2책)》,《중용강의보》,《흠흠신서》등의 다산가장본도 동시에 공개된다.


중용강의보


열초 산수도
‘열초’를 필명으로 쓰고 있는 작품은 동아대박물관 서강대박물관에도 동일계열의 작품이 있는데 이번에 처음 한자리에서 공개된다. 지금까지 개인소장의 열초(洌樵)《산수도(山水圖)》는 최초로 공개되는 작품이다. 이 그림은 말년 고향 열수에서 산수를 유람하며 세상을 관조하는 다산의 마음을 보는 듯 하다. 극도로 절제된 붓과 담묵(淡墨)과 채색(彩色)의 맑고 담담이 다산의 정신경계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모두가 다산 말년 학문친구인 홍현주 소장품임을 밝히는 소장인이 있다.


오객기
내각(內閣)에서 왕명에 의하며 다산이 지은 것으로 정조가 직접 보고[어고(御考)] 차상(次上)으로 평가한 기록이 있다. 출세할수록 겸손과 검약해야 함을 다섯 가지 객을 들어 비유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매조도
翩翩飛鳥 파르르 새가 날아
息我庭梅 뜰 앞 매화에 앉네.
有列其芳 매화 향기 진하여
惠然其來 홀연히 찾아 왔네.
爰止爰棲 여기에 둥지 틀어
樂爾家室 너의 집을 삼으렴.
華之旣榮 만발한 꽃인지라
有賁其實 먹을 것도 많단다.
위 시는 고려대박물관 소장《매조도》의 제시다. 《매조도》는 너무나 잘 아려져 있지만 유기적인 관계망 속에서 보지 못했다. ‘차가운’ 성정기질을 소유했을 것만 같은 경학자·경세가로서 다산과 ‘따뜻한’ 지아비나 아버지 스승은 물론 그 연장에서 자연을 지극히 사랑했던 다산의 마음을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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