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다>의 배우
송일국

"수업료를 내더라도 다시 서고 싶은 무대"

연극 <나는 너다>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영웅, 안중근의 삶을 조망한다. 안중근 의 삶과 영웅의 아들로 살아야 했던 안준생의 엇갈린 간극이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박정자, 배해선, 한명구, 원근희, 송영창, 강신일 등 쟁쟁한 배우들이 무대에 오른다. 안중근·안중생의 1인 2역을 소화하며 선 굵은 연기를 선보일 배우 송일국을 만나보았다.

지난 2010년, 안중근 서거 100주년을 기념해 공연되었던 정복근 작·윤석화 연출의 <나는 너다>는 안중근과 그의 아들 안준생의 엇갈린 운명을 통해 영웅과 그의 가족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제시한 작품이다. 배우 송일국의 첫 연극 무대라는 점에서도 관심을 모았던 <나는 너다>가 예술의전당 <명품연극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으로 5월 17일부터 6월 6일까지 토월극장 무대에 오른다. 같은 작품이라 할지라도 무대 공간이 달라지면 연기의 질감이나 두께가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KB국립 하늘극장이 배우의 모든 것을 드러내는 원형무대라면 토월극장은 무대 뒤쪽 깊숙이 펼쳐진 공간감이 유난히 크게 느껴지는 무대다. <나는 너다>의 초연 무대를 통해 자신의 연기를 360도 전면으로 펼쳐보였던 송일국, 이제 토월극장에서 그의 연기 너머 쌓이는 깊이와 울림을 확인할 차례다.

처음으로 도전한 연극 무대였는데, 실제로 무대에 서보니 어땠습니까?
제 인생에 첫 연극이다 보니 이 작품만큼은 신인 같은 마음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공연장에도 항상 먼저 가서 연습을 하곤 했죠. 하루는 남들보다 먼저 가서 연습하다가 문득 빈 객석을 바라보는데, 뭔지 모를 전율이 느껴지더라고요. 말로 설명하기는 참 힘든데, 빈 무대와 객석이 수십 대의 카메라보다 더 사람을 흥분시킬 수 있다는 걸 그때 느꼈어요.

남다른 가족사를 지니고 있는 만큼 안중근과 그의 아들 안준생을 연기하는 느낌이 각별했을 듯한데요.
이 작품이 단순히 안중근만 조명하는 게 아니라 그 아들 안준생의 삶을 함께 보여주기 때문에 제게는 더욱 의미가 컸습니다. 아무래도 외증조부나 외할아버지 같은 가족의 역사가 있다 보니 대본을 봤을 때부터 준생에 대한 느낌이 남달랐죠. 보통 사람들은 ‘영웅’ 하면 일단 위대하다고 치켜세울 뿐, 그 가족들이 감내해야 하는 고통에 대해선 잘 모르는데 저는 간접적으로나마 경험을 했으니까요. 어릴 적 어렴풋하게나마 듣고 자란 이야기들이 있어요.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다 바치고, 집에는 몇 달에 한 번 들어올까 말까 했다는 그분들의 험난한 삶, 또 가족들이 겪어야 했던 어려움. 그런 이야기와 기억들이 두 인물을 표현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배우로서 전환점을 찾기 위해 연극 무대에 도전한다고 밝혔었는데, 이 작업을 통해 가장 크게 배운 게 있다면 무엇입니까?
공연도 공연이지만 연습하면서 정말 배운 게 많았어요. 똑같은 대사를 수백 번 읽고 또 읽고, 그러면서 의미를 분석하고. 또 같은 말을 어떤 뉘앙스로 표현할 것인지 며칠씩 고민하고… 그러면서 연기하는 맛을 알게 되었다고 할까요? 이전에는 분석은커녕 그냥 대사 암기하는 것만으로 희열을 느꼈었는데, 이제는 대사 하나하나를 분석하고 표현하는 데서 전에 몰랐던 즐거움을 느껴요. 전에는 대본을 봐도 대사가 없는 신은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지금은 대사가 없는 장면이 더 궁금하고 재미있습니다.

송일국 하면 선 굵고 강한 연기자라고 생각해왔는데, 안준생 역에서는 아픈 상처를 지닌 유약한 인물을 섬세하게 표현해냈습니다. 연기적으로도 이번 작품을 통해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스스로 생각하기엔 어떻습니까?
사실 연기하기에는 안중근 역할이 더 편하고 수월했어요. 그동안 해왔던 역할들과 비슷한 맥락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배우로서는 안준생 역할이 더 매력적인 도전이었습니다. 그 내면의 아픔을 끄집어내서 표현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더라고요. 고생도 많이 했지만 덕분에 저도 몰랐던 자신의 다른 면들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공연을 보러 온 영화 제작자가 안준생 역할을 보고는 캐스팅 제의를 해왔어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송일국의 새로운 모습을 봤다면서 코믹한 캐릭터에 한번 도전해보자고 하더라고요. 저로서는 고마운 일이죠. 아마 안중근 역할만 맡았다면 그런 기회를 만나지 못했을 거예요.

연극 무대의 특성상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관객들의 반응에 당황스럽기도 했을 듯한데요.
희열이 느껴지던걸요. 방송이나 영화는 작업을 다 하고 난 뒤에, 그것도 뉴스나 인터넷을 통해 간접적으로 평가를 받게 되는데, 연극은 그 자리에서 바로 관객 반응이 오니까 확실히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커튼콜 때도 그렇지만, 가끔 한 장면이 끝난 뒤 박수가 쏟아지면 저까지 흥분되곤 했어요. 아, 기억나는 일이 하나 있어요. 맨 앞자리에 앉았던 한 부부가 커튼콜 때 “여보, 근데 왜 아들 역할 한 배우는 안 나와?” 하고 묻는 거예요. 제가 일인이역이라는 사전 정보 없이 보러 온 관객이었는데 끝까지 눈치를 못 챈 거죠. 그 말을 듣는데, 정말 몇 마디 칭찬을 듣는 것보다 더 고맙고 기분이 좋더라고요.


지난해 공연 직전, 모든 배우들과 함께 안중근 의사의 흔적을 찾아 항일 유적지 답사를 다녀왔다고 들었습니다. 공연을 앞두고 유적지를 방문한 감회가 남달랐을 듯합니다.
사실 공연 직전이라 무리가 있는 스케줄이었는데, 윤석화 연출이 결단을 내려서 결국 배우와 스태프들 모두 참여하게 되었죠.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고 밤새 야간열차 타고 이동하는 등 상당히 힘든 일정이었는데, 함께 소화하면서 서로 의지가 많이 되었어요. 그때 거기서 보고 느낀 감정들이 결국에는 작품에 다 녹아들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의군 역할을 했던 젊은 친구들이 대장정을 다녀오고 난 뒤 눈빛부터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았거든요. 애국이나 독립에 대해 막연히 생각하는 것과 직접 그 땅에 가서 그분들이 어떻게 이 땅을 지켰는지 실감하는 것은 정말 차이가 큽니다.

무대 위에서 요구되는 연기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해온 것과는 많이 달랐을 텐데, 그런 면에서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이 작품에 출연한 건 그 자체로 어떤 개인 교습보다 효과적인 공부였다고 생각합니다. 수업료를 내고라도 다시 출연하고 싶을 정도예요. 특히 윤석화 선배를 비롯해서 박정자, 한명구 선생님과 배해선 씨 등 같이 무대에 섰던 배우들에게 감사할 따름이죠. 워낙 내공이 센 분들이다 보니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되었거든요. 특히 박정자 선생님은 공연 중에도 늘 지켜보고 있다가 뒤로 불러서 이런저런 조언을 많이 해주셨는데, 그것들이 실제로 무대에서 큰 도움이 되었어요. 또 윤석화 선배는 스스로 배우여서 그런지 연출하면서도 배우들 감정을 뽑아내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어요. 그분들 덕분에 제가 제 능력 이상을 해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안중근과 대한의군이 함께 나오는 장면에서 앙상블이 상당히 좋았습니다. 젊은 배우들과 호흡이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공연 끝나고 나서 아내가 그러더라고요, 이 작품 하면서 시동생이 열 명 생겼다고요. 그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드라마나 영화 하면서 만나는 배우들과는 친해지는 데 한계가 있어요. 다들 스케줄도 바쁘고 기획사를 통해야 하니까 밥 한번 같이 먹기가 힘들죠. 그런데 그 친구들과는 매일 몸 부대껴가며 연습하고, 또 같이 대장정에도 다녀오고 하다 보니 이제는 정말 친동생 같아요. 공연 끝나고서도 그 친구들에게 가끔 드라마 대본을 보내주곤 했어요. 그들에게는 밥 한번 사주는 것보다 기회가 있을 때 공부시키는 게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니까요. 대본 보고 나름대로 공부한 다음 나중에 방송 보면서 비교해보면 연기에 도움이 많이 되거든요.


이번 <나는 너다> 무대에 다시 서면서는 어떤 부분에 가장 중점을 둘 생각입니까?
지난 공연 때는 원형무대이다 보니 스스로 연기하면서도 좀 산만한 게 있었어요. 그래서 자꾸 밖으로 내지르는 연기를 했는데, 5월에 공연하는 토월 무대는 집중도가 굉장히 높은 공간이라고 하더라고요. 거기에 맞춰 이번에는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기보다는 좀 더 안으로 갖고 들어가서 내면의 아픔을 표현하는 데 주력하려고 합니다. 특히 마지막에 “아버지!” 하고 절규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 안에 얼마나 많은 감정을 담아낼 수 있는지 한번 확인해보고 싶어요.

공연 이후 다시 드라마 촬영으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습니다. 연극을 하고 난 뒤 배우 송일국에게 어떤 변화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감히 말하건대 배우 송일국은 이 공연을 하기 전과 후로 나눌 수 있다고 할 만큼 귀중한 경험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나는 너다>를 통해 연기의 즐거움을 깨달았어요. 전에도 연기가 좋기는 했지만 그냥 열심히 하려고 할 뿐, 현장에 와서 즐기지는 못했는데 이번 작업을 하고 나서는 일을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 말이 있죠,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못 당하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못 당한다”라고요. 그 표현이 정말 딱 맞습니다. 지금 드라마 촬영 중인데, 며칠씩 밤을 새고 촬영을 해도 현장에 있는 것 자체가 즐겁다 보니 힘든 줄을 모르겠어요. <나는 너다> 작업을 마치고 난 뒤 저는 비로소, 연기하는 것에 대한 희열을 느끼게 된 것 같습니다.




(출처 : 예술의전당 월간정보지 2011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