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크 & 콘서트>의 가야금 연주자
이지영

"국악으로 빛을 발하다"

국악. 예술의전당 관객에겐 조금 생소한 분야일 수 있겠다.
그러나 동서양의 고전음악은 결국 하나로 통하는 것 아닐까.
<토크 & 콘서트> 4월 무대에서는 가야금 연주가, 아니 국악인 이지영을 만난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라는 생각을 벗어던지고 국악이, 가야금이 지니는 에너지 넘치는 생명력을 느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기획 회의가 한창이던 3월, 부드럽지만 강렬한 열정을 품고 있던 그녀와 마주앉았다.

첫 무대를 앞두고 걱정과 설렘이 섞인 대화를 주고받았다. 당시 그녀는 “‘토크’보다는 ‘콘서트’에 방점을 찍을 것”이라며 게스트를 불러놓고 이미 언론에 노출된 뻔한 이야기를 나누진 않을 거라 다짐했다. 1년이 지난 지금, 그 포부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듯하다. 노련한 손범수·진양혜 두 MC는 가까운 지인을 집으로 초대한 듯 조곤조곤 대화를 이끌었고,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한 게스트는 솔직담백한 인생담을 펼쳐냈다. 무대와 객석의 마음이 통하는 순간, 수준 높은 연주는 홀을 가득 채웠고 1년 내내 인기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다. 이제 2011년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었다. 지난달 첼리스트 양성원을 시작으로 4월의 주인공은 국악인 이지영이다. 월간지를 애독하는 콘서트 고어라도 이름 석 자가 낯설 법하다. 특별히 그녀는 ‘손범수·진양혜’s Choice’라는 타이틀로 초대된다.


이지영의 가야금, 진양혜의 추임새!
진양혜에게 ‘국악’이란 일종의 숙제와 같았다. 아나운서로 갓 입사해 ‘국악춘추’라는 프로그램을 맡았다. 당시 PD는 국악을 대중화시키고자 했고, 그녀의 톡톡 튀는 발랄함을 높이 평가해 진행을 맡겼다. 결과는 6개월 만에 실패. 국악 프로그램은 진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질책도 받았다. “그땐 민요를 배우며 ‘한강수 타령’도 불러보고 재밌었어요. 이후 가요·팝·클래식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국악과 좀 멀어졌죠. 그래서 마음 한편엔 국악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게 있어요. 언젠가 좋은 자리에서 많은 이들과 국악을 나누고 싶었던 소망이 이제야 이뤄졌네요.” 진양혜는 서울대 인문학 강좌 중 가야금 연사로 이지영을 처음 만났다. 그 수업에서 가야금 종류가 그렇게나 많은지도, 우리 정가가 얼마나 힘이 있는지도 처음 느꼈다.

국악 무대에 대한 기대 어린 눈빛은 자연스레 이지영에게 집중됐다. 그녀는 어렸을 때 경주 근처에 살았다. “신라 무덤이 제 놀이터였어요. 다섯 살 때 엄마 손에 이끌려 경주 지역에 원로 예술가(문정 이말량 선생)께 무용과 가야금,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선조들이 그랬듯이 악가무(樂歌舞)를 같이 배우는 정통 스타일인 셈이죠.” 주위에선 딸아이에게 피아노를 시키라고 했단다. 그래도 어머니는 딸이 크면 시대가 달라져서 우리 음악이 중요하게 될 거라고 딸을 격려했다. 선견지명이 있는 어머니, 아니 모녀였다. 무용은 중1 때 그만뒀고 선화 예술 중·고에서 가야금을 계속했다. 자기가 좋아서 하는 사람은 아무도 못 말리는 법. 가야금만 보고 달려왔다. 이후 서울대 음대 국악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이화여대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가야금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립국악원 정악단 단원과 용인대 국악과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서울대 국악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국악’이라 하면 대중과 거리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 음악을 많이 접해보지 못해서 그런 것 같아요. 저는 오히려 초등학교 때 서양음악을 듣곤 낯설었어요. 음악 성적이 양·가이기도 했거든요(하하). 제가 원하는 것은 국악기로 연주하는 음악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카페에서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일상적으로 다가오는 환경이 되는 것이죠.”(이지영) 우리 음악 중에서도 판소리나 민요는 그나마 많이 알려져 있지만 상류층이 즐기던 음악들은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20대 중반부터 정악의 최고 연주단체인 정농악회에서 활동한 이지영은 그쪽으로 포커스를 맞추려 한다. “우리 민속악은 굉장히 솔직하고 자유롭지만 정악은 그에 비해 반대되는 느낌이죠. 정악의 ‘정’은 바를 정(正)입니다. 용어 자체에서 알 수 있듯이, 즐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음악을 통해서 나를 수양하는 거죠. 옛날 서재 그림을 보면 항상 악기 그림이 있어요. 좌금우서, 왼쪽엔 악기가, 오른쪽엔 책이 있다는 거죠.”

한참 대화를 듣다 보니 국악에 대한 낯선 용어들이 출몰했다. 더불어 이번 무대에서 연주될 곡도 궁금했다. 단소, 생황, 장고 주자와 함께 ‘이수대엽’(여창(女唱) 중 가장 느린 곡), ‘편수대엽’(가장 빠른 곡) 등을 연주하고 가야금의 전통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가야금 산조, ‘추천사’ 등을 들려줄 계획이다. ‘추천사’라는 단어에 진양혜의 눈이 반짝했다. “국악관현악단 연주를 들어본 적 있는데 어린 친구가 부르는 ‘추천사’에 가슴이 아리더라고요. 4월, 사랑 이야기도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으세요? 동서고금을 떠나 사랑은 보편적 정서이니, 그것을 테마로 잡고 싶어요.”(진양혜) “‘추천사’는 춘향이 그네를 뛰면서 향단에게 하는 말인데 ‘내가 서쪽으로 갈 수 있도록 등을 밀어다오’라 말하죠. 가려고 해도 갈 수 없다는 의미예요.”(이지영) 서쪽은 이상향을 말하는 것이란 설명에 진양혜는 그것이 춘향에겐 사랑이 아닌지 되물었다. 이번에 연주할 곡의 가사도 ‘사랑’과 ‘봄’에 집중한다. 우리 선조들은 사랑과 봄을 함께 느낀 듯하다. 연주곡뿐 아니라 다양한 가야금도 선보인다. “12현·18현·21현·25현금과 일렉트릭 가야금, 철 가야금, 고음을 내는 소가야금, 저음가야금 등 종류를 셀 수 없습니다. 서른 개 정도 가지고 있는데 이번 무대에서 소개해드릴 겁니다.”(이지영)

리사이틀홀은 그것만의 장점이 뚜렷하다. 무대와 객석이 가깝기 때문이다. 진양혜는 리액션이 따뜻하다는 것을 큰 특징으로 꼽았다. 인터뷰 내내 “말을 잘 못한다”라며 걱정하던 이지영은 특유의 낮고 은근한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이어갔지만 그녀의 목소리에선 강단과 열정이 느껴졌다. 그것이 가야금의 매력 아닐까. 4월 리사이틀홀에서 손범수·진양혜, 그리고 이지영의 부드럽지만 깊이 있는 에너지를 느껴보고 싶다.

(출처 : 예술의전당 월간정보지 2011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