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끼니꾸 드래곤>의 두 배우
고수희 & 와카마츠 치카라

"진짜 가족 같은 느낌, 아세요?"


한일합작연극 <야끼니꾸 드래곤>은 극작 겸 연출가 정의신의 자전적 작품이다. 재일교포 3세인 그는 어린 시절 경험을 토대로 용길이네로 대표되는 재일교포들의 다사다난한 삶을 그렸다. 그런 용길네 가족 가운데 막내 토키오 역에는 그의 어린 시절 모습이 많이 투영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자(話者)’로서 이 연극의 시작을 알리고 끝을 맺는 토키오 역은 일본 배우 와카마츠 치카라(若松力, 34)가 맡고 있다. 중견배우 와카마츠 다케시(若松武史)의 아들인 그는 연극을 주요 무대로 활동하면서 최근 영화와 TV 드라마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그런데 정의신 스스로 “나의 페르소나”라고 지칭하는 배우는 따로 있다. 바로 토키오의 엄마 영순 역을 맡은 한국 배우 고수희(35)다. 극작 겸 연출가 박근형이 이끄는 극단 골목길의 간판 배우인 그녀는 연극 <청춘예찬>, <경숙이, 경숙아버지>, 영화 ‘친절한 금자 씨’, ‘너는 내 운명’ ‘그놈 목소리’, 드라마 ‘자명고’ 등에 출연해 강한 인상을 남긴 바 있다. 3년 전 <야끼니꾸 드래곤> 초연 당시엔 외국인 최초로 일본 요미우리 연극대상 우수여배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극중에선 모자 관계지만 연극이 끝나면 누구보다 친한 친구인 와카마츠 치카라와 고수희를 <야끼니꾸 드래곤>이 공연 중이던 2월 중순 도쿄 신국립극장에서 만났다. 개막 전에 이미 티켓이 매진될 정도로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에 두 사람은 기쁜 만큼 부담도 크다고 입을 모았다. “이 작품이 초연 때 워낙 좋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에 재연에 대한 기대감이 너무 높아요. 관객뿐만 아니라 저희 배우들도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모습을 보이려고 열심히 하게 돼요.”(고수희, 이하 고) 실제로 도쿄에서 공연된 <야끼니꾸 드래곤>은 초연 때보다 더 좋아졌다. 웃음을 주는 포인트가 늘어난 것이 특징. 슬픈 대목에 웃음을 집어넣음으로써 맹목적인 슬픔이 아니라 살아가는 힘을 강조하는 정의신 특유의 스타일이 더욱 두드러져보인다. 일부 배우들 역시 초연 때 다소 경직됐던 부분이 사라져 작품의 맛을 살리고 있다. “이번 재연 때엔 우리 배우들이 진짜 가족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지난 3년 동안 <야끼니꾸 드래곤>과 함께 공연했던 배우들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따로 ‘역 만들기’를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와카마츠 치카라, 이하 와) 와카마츠 치카라는 이야기를 마친 후 목에 걸고 있던 목걸이를 꺼내서 보여줬다. 이 목걸이는 초연 당시 한국 배우 박수영이 <야끼니꾸 드래곤>에 출연한 모든 배우들에게 각자의 이름을 새겨서 선물한 것이다.

사실 두 사람은 <야끼니꾸 드래곤> 초연 당시 가장 먼저 캐스팅된 배우다. 2006년 아시아연극연출가워크숍에서 <20세기 소년소녀 창가집>에 출연한 고수희를 본 정의신은 <야끼니꾸 드래곤>의 희곡을 쓸 때부터 영순 역에 고수희를 염두에 뒀다. 정의신이 희곡을 쓰고 일본 여성 연출가 마츠모토 유코(松本祐子)가 연출한 <20세기 소년소녀 창가집>에서 고수희는 주류에서 밀려난 개인의 소외를 가슴 아프게 표현해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정의신 선생님이 2007년 <야끼니꾸 드래곤>의 영순 역을 처음 제안했을 때 바로 승낙했죠. 좋은 작품이 나올 거라는 확신이 있었거든요.”(고) 한편 토키오 역은 극중에서 15세지만 연기력이 요구되는 배역이어서 <야끼니꾸 드래곤> 스태프들은 캐스팅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었다. 하지만 와카마츠 치카라를 만난 정의신은 그에게서 토키오의 모습을 발견하고 바로 캐스팅을 결정했다고 한다. 다만 너무 말라서 나이 들어보이기 때문에 조금 살을 찌우라는 조건이 붙었다고. “동안이긴 하지만 초연 때 이미 서른 살 넘은 제가 열다섯 살 중학생 역할을 연기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어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닌 예민한 소년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제 과거 기억을 떠올리면서 연기하고 있습니다.”(와)

고수희와 와카마츠 치카라에게 재일교포는 어떤 의미일까. 두 사람은 이 작품을 하기 전까지 재일교포에 대해 변변한 지식조차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한국인들 대부분이 주변에서 재일교포를 만날 기회가 없잖아요. 그래서 재일교포들이 그동안 겪은 차별이나 어려움을 잘 몰랐었던 것 같아요.”(고) “저는 다른 일본인에 비해 재일한국인이 그렇게 멀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예전에 정의신 선생님을 비롯해 재일한국인이 많았던 극단 신주쿠양산박에서 배우 활동을 하셨기 때문이죠. 저 역시 한국 친구들이 있고요. 하지만 <야끼니꾸 드래곤> 속에서 묘사된 여러 고민이나 어려움에 대해서는 잘 몰랐습니다. 솔직히 김희로 사건도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와)

이 작품 때문에 재일교포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는 두 사람은 자신의 역을 충실히 해내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우선 고수희의 경우 초연 직전 다른 한국 배우들과 함께 재일교포가 많이 거주하는 오사카를 방문해 재일교포 생활을 직접 체험했다. 그리고 일본어 대사의 비중이 큰 만큼 일본어를 열심히 공부해 지금은 유창하게 말할 수 있는 정도까지 됐다. 그녀는 극중 배경인 간사이 지방의 사투리도 맛깔스럽게 구사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일본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공부 시작한 것이 제 일본어 비결입니다. 도쿄 표준말을 잘 알았다면 간사이 사투리를 배우기가 쉽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처음부터 간사이 사투리로 배우다 보니 그게 입에 익었어요.”(고) 와카마츠 치카라의 경우 오사카에서 태어난 만큼 간사이 사투리는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다만 연극에서 묘사한 당시 재일교포의 삶을 체감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이 때문에 그는 올해 앙코르 공연을 앞두고는 혼자서 오사카의 이타미 공항을 찾아갔다. 이곳이 연극에서 묘사한 재일교포 부락이 있던 곳의 모델이기 때문이다. “비행기 이착륙 소리가 어찌나 큰지 여기서 어떻게 재일한국인들이 살았는지 모르겠어요. 그렇다 해도 자기가 태어나 사는 곳을 억지로 떠나게 됐을 때 분한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해요.”(와)

한일 합작 공연인 <야끼니꾸 드래곤>에서 두 번째 호흡을 맞춘 이들에게 각각 상대 국가 배우들과 함께 연기한 소감을 묻자 동시에 “신선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한국 배우들이 감정에 충실하고 즉흥적인 데 비해 일본 배우들은 철저하게 계산된 연기를 합니다. 저도 약간 즉흥적인 면이 있는데, 일본 배우들이 정확하게 룰을 지켜가며 연기하는 것은 배울 필요가 있다고 봐요. 공동작업인 연극에서 연기란 ‘액션’이 아니라 ‘리액션’이라고들 말합니다. 상대방과의 관계성 아래에서 연기해야 한다는 뜻이죠.”(고) “한국 배우들은 연기에 힘이 있어요. 특히 감정을 드러내는 장면에서 폭발하듯 연기하는 것은 일본 배우들에게서 결코 찾아볼 수 없는 특징입니다.”(와)
상대국 관객들을 접한 소감에 대해서는 두 배우 모두 “일본보다 한국 관객들의 반응이 훨씬 좋았다”라고 대답했다. 특히 와카마츠 치카라는 한국 관객들의 반응을 연신 떠올리며 즐거워했다. “일본인은 감정을 억누르는 경향이 강한데, 한국인은 감정을 분출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습니다. 그만큼 한국 관객들의 리액션이 좋기 때문에 배우 입장에서는 연기하는 것이 더 즐겁죠. 극중에서 토키오가 지붕 위에서 몸을 날려 자살하는 장면이 있는데, 한국 관객들이 먼저 소리를 질러서 너무 놀라 정해진 시간보다 먼저 떨어질 뻔했어요. 대학로 소극장에서도 연극을 본 적 있는데, 관객이 배우들과 함께 작품의 일부를 만들어가는 것 같아서 재밌었어요.”(와) 서로 다른 공연 환경과 관객 반응이 인상적이었던 두 배우는 <야끼니꾸 드래곤> 이후에도 상대 국가에서 공연할 기회를 가지길 희망했다. 지난해 일본 연극 제작사인 시스컴퍼니의 <엘레강스>에 출연한 바 있는 고수희는 특히 일본의 세련된 제작 시스템을 칭찬했다. “일본의 작은 극단에 가면 사정이 다르겠지만 신국립극장이나 시스컴퍼니 같은 전문 극장 또는 회사의 제작 시스템은 부럽습니다. 배우가 연기에만 집중하도록 해줘서 정말 좋았어요.”(고)

마지막으로 서로에 대한 평가를 부탁하자 와카마츠 치카라가 먼저 나섰다. “<야끼니꾸 드래곤> 초연 전에 수희가 나오는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하필이면 ‘친절한 금자 씨’였어요. 마녀 역의 수희 연기는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그래서 (연극에서) 어떤 엄마일지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연습실에서 만났을 때 정말 귀엽고 친절해서 금방 친해졌어요. 연기력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뛰어나서 배울 점이 많습니다.”(와) 다음은 고수희 차례. “일본 배우들이 대부분 성실한 편이지만 치카라는 정말 성실해요. 매일 하는 공연이지만 늘 진지한 자세로 임하는 것을 보면 저 자신도 다시 한 번 자세를 가다듬게 됩니다. 그리고 치카라는 아이처럼 순수해요. 저랑 한 살밖에 나이 차이가 나지 않지만 제 아들 역이라 그런지 훨씬 나이 차가 많은 동생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극중에서 몰입하기도 더 수월한 것 같아요.”(고)

(출처 : 예술의전당 월간정보지 2011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