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라이몬다>의 두 주역
김주원 & 김지영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주원ㆍ김지영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둘과의 인터뷰는 발레 <백조의 호수> 같았다. 누가 백조, 누가 흑조일까. <백조의 호수>가 떠오른다고 하자 김지영은 대뜸 “난 로트바르트?”라며 연막탄을 뿌리곤 까르르 웃어버렸다. 두 발레리나는 전막 발레 <라이몬다>에서 여주인공 라이몬다로 춤춘다. 이어 10월 초에는 러시아 볼쇼이극장에서 볼쇼이발레단과 <로미오와 줄리엣>을 공연할 예정이다. 둘과의 인터뷰는 공간만 같았을 뿐 따로 진행됐다.

김주원, ‘극적 사랑의 절정’
김주원은 8월 휴가 중에도 국립발레단에 매일 나가고 있었다. 처음 공연하는 <라이몬다>가 걱정스러워서다. <라이몬다>는 13세기 십자군 시대의 헝가리 왕국이 배경이다. 기사 장 드 브리엔의 약혼녀 라이몬다가 영주의 유혹과 협박을 뿌리치고 그와 결혼하는 이야기는 춘향전과 닮아 있다. 유리 그리가로비치가 안무했고 알렉산드르 글라주노프의 음악을 쓴다. 김주원은 “가장 좋아하는 클래식이지만 무용수로서는 힘겨운 작품”이라고 말했다. “이국적이면서 웅장한데 실은 좀 걱정돼요. 춤이 상당히 많고 강한 에너지도 필요해요. 무용수들 사이에서는 <잠자는 숲 속의 미녀>보다 혹독한 것으로 유명한 작품이죠.” 클래식과 모던발레는 쓰는 근육부터 다르다. 김주원은 “7월에 <롤랑 프티의 밤>을 공연하고 바로 <라이몬다>를 춤춰야 해서 진폭이 크다”라면서 “<라이몬다>는 팔의 포지션도 독특하고, 동서양이 절묘하게 겹쳐져 있는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안무가 그리가로비치는 김주원을 ‘한국의 뮤즈’라 칭한 적 있다. 김주원은 “클래식 발레의 여주인공은 청순가련형이 기본이지만 내 속에는 강인한 무엇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라이몬다’ 같은 사랑이 가능할까. “결혼에 대해 현실적인 시선을 갖고 있다”라는 그녀는 “여자들은 다 운명적인 만남, 극적인 사랑을 꿈꾸는 것 같다. 그래서 내 결혼이 늦어지나?”라며 웃었다. 올 초 출연한 뮤지컬 <컨택트>에 대한 기억을 불러내자 “나를 보여줄 수 있고 노래는 하지 않아도 돼 마음을 먹었는데, 연기 잘했죠?”라고 반문했다. 발레에 대해서는 “3~4년 전부터는 춤을 추면서 늘 행복하다”라면서 “그전에는 나만 생각했는데 이젠 같이 춤추는 무용수들, 관객의 호흡까지 보인다”라고 했다. 발레는 무용수의 수명이 짧은 예술이다. 국립발레단에서 14년을 춤춘 ‘왕언니’ 김주원은 “내게도 더는 요정처럼 보이지 않는 나이가 온다. 감동을 줄 수 없다면 미련 없이 내려올 것”이라고 말했다. 기대하는 무용수로는 윤혜진ㆍ김리회ㆍ박슬기ㆍ신승원ㆍ고혜주ㆍ박세은ㆍ김현웅ㆍ이동훈ㆍ정영재 등을 꼽았다. 스스로 컴맹에다 기계치라는 그녀는 뱀파이어 영화를 좋아하며, 노래방 18번은 ‘거위의 꿈’이다. 요즘엔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에 빠져 있다고 했다.

김지영, ‘장엄한 바다의 춤’
김지영에게 휴가는 휴가였다. 강원도에 다녀오면서 살짝 선탠도 했다. “매일 오전 서울교대 운동장을 달리는 것을 빼면 발레랑 다른 세상에서 산다”라고 했다. 국립발레단이 <라이몬다>를 올린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김지영의 반응은 “나는 죽었다”였다. 그는 “왜 이렇게 힘든 작품만 가져오실까, 하는 생각을 했다”라면서도 “무용수로서는 새로운 경험이고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낭만적이기보다는 ‘장엄한 바다’라고 할까요. <라이몬다>는 격조 있는 클래식이에요. 세월을 견디는 아름다움이 있어요. 영화배우로 치면 오드리 헵번, 패션에 빗대면 샤넬 수트.” “김주원의 상체, 김지영의 하체”, “김주원의 카리스마, 김지영의 테크닉”이라는 말이 있다. 김지영의 경우 친구 따라 발레학원에 처음 간 게 1987년이었다. 그는 “멋모르고 시작해 그저 좋아 열심히 했다”라면서 “처음엔 발레를 내게 가져오기 위해 노력했다면 지금 발레는 ‘싸워도 헤어질 수 없는 가족’ 같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갈수록 발레가 힘들다”란 고백을 했다. “무대에 오르기 전에, 또 1막이 끝나고 백스테이지에서 ‘내가 지금 왜 이걸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을 해요. 갈수록 긴장이 돼요. 완벽에 대한 욕심 때문이겠지요.” 김지영은 “좋은 무대를 만들려면 필요한 긴장이겠지요”라며 표정을 바꿨다. “무용수들이 고통을 지불하지 않는다면 좋은 공연도 없을 것”이라는 건 진리다. 김지영은 “많은 것을 이룬 것 같지만 갈 길이 멀다”면서 “난 제대로 감사할 줄 모르는 욕심쟁이”라고 했다. 김지영은 “드라마 발레에 끌리는데 <백조의 호수>도 좋다. 클래식 발레는 단면적인 동화에 가깝지만, 같은 동작에도 여러 가지를 응축해 보여주는 게 역량”이라고 말했다. “백조·흑조 둘 다 좋아요. 사람은 누구나 이중적이에요.” 그는 “발레를 잘하려면 머리가 좋아야 한다”라면서 “너무 자만해도 안 되고 자신감이 없어도 안 된다”라고 했다. 머리와 가슴(마음)을 가리키면서 “몸보다는 요기와 요기가 중요해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김지영은 발레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더 힘들게 살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로맨스 영화와 에로 영화를 보며 표현력을 가다듬는다는 이 발레리나. 좋아하는 노래는 GOD의 ‘길’이었다.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출처 : 예술의전당 월간정보지 2010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