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닻 올린 예술의전당, 지금 순항 중!
예술의전당 신임 사장 김장실


새해가 또 왔다. 누구나 통과의례처럼 지난 기억을 지워내고 ‘희망가’를 품을 때다. 시절이 어수선할수록 희망가는 간절해진다. 때로 그 희망 가는 주술처럼, 혹은 마법처럼 힘을 뿜어낸다. 2010년의 닻을 올린 '예술의전당 호’도 희망가로 충만하다. ‘국내 최대의 복합문화공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클래식 한류의 발전기지’로 재도약하겠다는 포부가 등등하다. 이 목표는 특히 신임 선장이 큰 목소리로 선창하고 있다. 이 희망가의 리드 보컬, ‘예술의전당 호’의 새 선장, 김장실 사장을 만났다.

100년 만의 폭설이라더니, 기어코 약속 시간에 늦고 말았다. 살면서 이런 큰 눈은 처음이었다. 인터뷰가 예정된 사장실 문을 열면서도 턱 밑까지 차오른 숨은 가라앉힐 수 없었다.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대단한 눈이죠?” 이 방의 새 주인, 김장실 예술의전당 사장이 반갑게 손을 내밀었다.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가 자연스레 그의 첫인상에 훈기를 녹여넣고 있었다.

(이하 김장실 사장과의 일문일답)

한수진(이하 한) : 축하드립니다. 취임하신 지 아직 한 달도 채 안 됐네요.
김장실(이하 김) : 지난 12월 18일에 임명을 받고 이곳에 왔는데,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업무 파악하느라 제야음악회니 신년음악회니 연말연시 큰 행사들 치르느라 바빴어요. 그래도 좋았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에서 물러난 게 지난해 4월인데요. 성신여대 석좌교수로 강의도 하고 국제문화포럼 창립 준비위원장을 맡기도 했지만, 솔직히 몸이 좀 근질근질하더군요. (웃음)

: 예술의전당은 사장님께 이미 익숙한 공간이시죠?
: 아무래도 그렇지요. 문화관광부 예술국장으로 2년 3개월쯤 있었는데, 업무 때문에 예술의전당에 자주 오곤 했습니다. 물론 자주는 아니지만 업무와 상관없이 관객이 되어 찾아온 적도 많았고요. 그런데 확실히 다르네요.

: 어떤 점이 다릅니까?
: 객석에 앉아 마음 편히 공연을 보던 ‘손님’이었는데, 이제는 입장이 바뀌었잖아요. 어디 개선할 점은 없나 미흡한 점은 없나 자꾸 신경이 쓰이고 살피게 됩니다. 오늘도 직원들과 눈 치울 걱정하고 있었어요. 예술의전당이 생긴 지 20년이 넘었습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복합문화센터로 지금까지도 잘해왔지만, 새로운 출발이 필요한 시점이 됐습니다. 혁신과 재도약을 이뤄서 세계 최고의 복합아트센터로 확고히 자리해야지요.

김장실 사장에게서는 자신감이 묻어났다. 문화행정을 두루 거친 관록이 그 자신감을 자만이나 조급이 아니라 탄력적 리더십으로 연결시키고 있다는 기분 좋은 느낌이 들었다. 김장실 사장은 경남 남해 출신으로 영남대 행정학과를 졸업하던 해에 바로 행정고시 23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사무관으로 첫 임용된 것이 문화공보부. 당시 이 부처에서 문화행정 조직은 문화예술국 하나뿐일 정도로 문화에 대한 관심도가 낮았다. 공보 파트가 예산의 대부분을 썼던 시절이었다.

: 고시공부하던 무렵 친구들은 저를 ‘야당 대변인’이라고 불렀죠. 제가 매일같이 시사 해설을 해줬는데, 그게 재미있었나봐요. ‘그런 말솜씨면 문화공보부가 딱이다’라고 권유들을 했지요.

: 청와대 근무도 오래하셨더군요.
: 두 번을 들어갔는데 세 정권,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부를 거치면서 햇수로 10년 정도 근무했습니다.

그는 ‘외유내강의 추진력’과 ‘부드럽고 겸손한 처세’로 명성이 나 있다. 이런 성품과 오랜 청와대 근무 경력은 김장실 사장에게 폭넓은 정관계 인맥을 선사했다.
또 최고 권력기관에서 민주화 과정을 지켜본 경험은 그의 유학 생활에서 큰 자산이 됐다. ‘학구파’라는 평가는 이후 김 사장의 트레이드마크로 떠올랐다.

: 하와이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따셨죠.
: 워낙 거대담론에 대한 지적 관심이 많았어요. 우리나라의 민주화 전개 과정을 논문 주제로 썼지요. 그런데 돌아와서는 아무래도 문화행정을 맡고 있다 보니 문화에 대한 사회과학적ㆍ정치학적 해석으로 관심이 이어지더군요. 서울대 아시아 연구소에서 써 달라고 주문 받은 책이 있습니다. 70퍼센트 정도 썼는데요, 세계화가 문화 정체성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를 다룬 책이죠. 빨리 마무리해야 하는데 요즘 도통 속도를 못 내고 있어서 마음만 급하지요. 제가 쓰고 있는 책이 한 권 더 있어요. 가칭 ‘한국 대중가요의 정치사회학’이라는 책이지요.

: 대중가요의 정치사회학이라고요? : 그렇습니다. 대중가요는 시대정신을 구현하고 있지요. 실은 제가 워낙 어렸을 때부터 트롯 부르는 걸 좋아하기도 했기 때문에 이런 연구를 하게 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책 이야기가 나오자 김 사장 표정이 무척 즐거워졌다. 시대별 유행가요와 친절한 해설이 막힘 없이 줄줄 흘러나왔다. 예정에 없던 주제에 인터뷰 시간이 많이 할애됐지만 ‘학구파의 즐거운 반전’으로 대화의 온도는 후끈 달아올랐다. 그의 프로필만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었던 모습에 동석한 직원들도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김장실 사장이 노래 한 곡을 자청했다.

그렇게도 소중히 아꼈던 행복
이다지도 쉽사리 가실 줄이야
그대 떠난 그 후에 병든 내 마음
달래주던 옥이도 내 딸 옥이도
날 버리고 가버렸네. 아빠 곁으로
너무나 큰 행복이 무너졌기에
내 가슴에 상처도 너무 깊었소
다시 못 올 그 시절 그리운 시절
눈시울에 그리며 더듬어가며
의지가지 없는 몸이 홀로 웁니다.



: 제가 아주 좋아하는 ‘옥이엄마’라는 노래입니다. 1965년 한산도 작사, 백영호 작곡의 영화 ‘옥이엄마’의 주제가였어요. 이미자 씨가 불렀죠. 이 노래 아시나요?

: 처음 듣습니다. 그런데 노래 솜씨가 보통이 아니시네요? 미성에다가 음을 꺾는 게 프로 수준이신데요.
: 노래를 잘한다기보다 좋아한다고 해야겠죠. 취미를 물어보면 저는 바로 ‘노래 부르기’라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기억인데, 가을 소풍 때 이미자 씨 노래인 ‘정동대감’을 불렀는데 반응이 괜찮았지요. 한동안 학교에선 정동대감이 별명이었어요. 산사에서 고시공부를 할 때도 가슴이 허허로워지면 노래를 불렀어요. 몇 곡 내리 부르고 나면 가슴이 뻥 뚫리면서 공부도 잘됐죠.

: 가사를 외워 부를 수 있는 곳은 몇 곡이나 됩니까?
: 수십 곡이 넘죠.
: 그럼 최근 신세대 가요도 가능하세요?
: 아, 그건 못 부릅니다. 1970년대까지 트로트 가요는 거의 꿰고 있어요. 그런데 그 다음부터는 일이 바빠서 업데이트를 못 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시절, 나름 ‘명강사’로 이름을 떨친 것도 노래 솜씨 덕이 컸다고 한다. 전남 장성군의 ‘장성 아카데미’ 초청강의에서는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저명한 강사들을 제치고 가장 열렬한 반응을 얻었다. 딱딱하고 무거운 강의를 예상했던 주민들은 “시계도 안 보고 즐겼던 강의”라고 입을 모았다.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생들 사이에서 ‘다시 듣고 싶은 강의 1위’로 뽑히기도 했는데, 강의 틈틈이 2절까지 부른 노래가 13~14곡은 됐다고 한다.

: 신임 사장께서 이처럼 대중가요를 좋아하시고 즐기시니, 앞으로 대중가수들이 예술의전당 문턱이 높다고 비난할 일은 없겠는데요?
: 큰 논란이 됐던 문제인데 신중히 결정할 사안이죠. 혼자 결정할 문제는 아니고, 당연히 개인적인 선호를 내세울 일도 아닙니다.

: 복합예술공간을 이끌고 계시니, 대중가요 말고 다른 예술 분야에도 관심을 더 기울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 물론 그렇지요. 그래서 곧 아리아 두 곡 정도 마스터할 계획입니다.(웃음)

정통 관료지만 남다른 ‘문화적 감수성’을 가진 김장실 사장과의 유쾌한 대화는 미래로 향했다. 전임 사장이 임기를 중도 사퇴하면서 뒤숭숭했던 ‘예술의전당’에는 미뤄둔 일들이 많았다. 노후공간과 시설은 업그레이드를 기다리고 있다. 또 경쟁과 효율의 요구를 외면하지 않은 채 ‘명품 무대’를 올려야 하는 사명도 안고 있다.

: ‘명품 기획 프로그램’을 위해선 발상의 신선함, 규모의 대담함, 시의 적절함 등 3대 요소가 필요합니다. 2010년은 앞으로 3년간 베토벤ㆍ브람스ㆍ바흐를 집중 조명하는 이른바 <3B 시리즈>의 첫 해가 될 겁니다. 또 한국전쟁 60주년, 경술국치 100주년 등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예술행사는 물론 G20정상회의 등 국가대사에 맞는 뜻 깊은 공연과 전시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자체 기획공연 건수도 지난해보다 30퍼센트 이상 늘렸습니다. 기획공연과 대관공연이 경쟁을 통해 서로 수준을 높이는 ‘윈윈 관계’를 지향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민간자금 유치도 본격화할 생각입니다. 한정된 예산으로 대규모 공연을 욕심내기 어려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 예술의전당을 ‘클래식 한류의 전진기지’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좀 풀어 설명해주시죠.
: 현재 세계적인 콩쿠르의 결선 무대는 아시아계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그중에서도 절반 이상이 한국 출신입니다. 예술대국의 가능성은 이미 충분하지요. 지금까지 우리는 문화 수신국이었지만 이젠 문화 발신국으로 나아갈 때입니다. 젊고 유능한 연주자들에게 ‘꿈의 무대’를 제공해 ‘클래식 한류’ 붐을 일으키겠습니다. 또 관광상품과 연계해서 대한민국을 찾는 외국인들이 꼭 들렀다 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합니다.

정확히는 올해로 22년의 세월이 흘렀다. 예술의전당이 역사를 더하는 동안 이곳 사장실 주인도 여러 번 바뀌었다. 예술인도, 정통 관료 출신도, 기업인 출신들도 거쳐갔다. 때로는 기대를 넘었고 때로는 실망을 남겼다. 제 12대 김장실 사장, 예술의전당 역사에 그는 어떤 각인을 남길까? 결코 희미하거나 흐릿한 발자취는 아닐 것이다. 그의 희망가는 주술처럼, 혹은 마법처럼 에너지를 뿜어낼 것 같다. 열창까지 버무린 그와의 인상 깊은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는 사장실 문턱에서 그런 예감이 강렬하게 피어올랐다.

(출처 : 예술의전당 월간정보지 2010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