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40년 동안, 뉘앙스의 궤적
국제무대데뷔 40주년 기념음악회를 여는 첼리스트 정명화


첼리스트 정명화(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세계무대 데뷔 40주년 기념 연주회를 갖는다. 정명화는 1969년 디트로이트 심포니와 미국 투어를 하면서 처음으로 미국 전역에 첼리스트 정명화라는 이름을 각인시켰고 그 후 2년 뒤인 1971년 참여한 제네바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1등으로 입상하면서 유럽 무대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어느덧 40년이 흘렀네요. 전에 비해 확실히 여유가 생겼고 청중들도 느껴요. 20대에는 과시하려고 힘을 많이 썼다면, 지금은 요령이 생기고 자연스러워졌죠.” 정명화의 말에서 넉넉함이 묻어난다. “채우기보다는 비울 수 있기에 누리는 것이 많아졌다”는 말은 지금 그녀의 모습과 보기 좋게 일치한다.

늘 하나의 대상을 지그시 응시하는 듯한 안정감과 일관성, 그 위에 띄우는 개성 있는 음색으로 세계무대의 각광을 받아 온 정명화는 LA 필하모닉, 빈 필하모닉 등 전 세계 유수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및 독주회, 그리고 정트리오의 일원으로 왕성한 연주 활동을 펼쳐 왔다. 1994년부터는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재직, 국내에서 후학 양성에 심혈을 기울이면서 한국 첼로계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왔고, 차세대 한국 첼리스트들을 발굴해 왔다. 4월 22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펼쳐지는 이번 40주년 기념 연주회는 세계를 무대로 한 1세대 음악인 첼리스트 정명화의 40년 음악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자리이다. 그와 동시에 정명화로부터 그 제자들로 이어져 온 한국 첼로계의 현 주소를 함께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무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정명화에게 첼로는 숙명적인 악기였다. 어린 시절 처음 손에 쥐었을 때부터 좋았다. 나지막하고 부드러운 사람의 목소리를 닮은 악기. 마른 체구였지만 손이 컸고 손가락도 굵었던 정명화는 손끝이 푹신푹신한 게 플랫을 쥐기도 편하다고 느꼈다. 체구도 맞고 6개월 정도 하니까 ‘내 악기다’란 생각이 들었다 한다. 어린 시절에는 첼로보다도 노래를 더 좋아하기도 했다. 4년쯤 성악 레슨을 받았고 노래가 제일 자연스러웠다. 마리아 칼라스의 LP를 늘 소중하게 들었다. ‘인간의 목소리처럼 자연스런 아름다움은 없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그러다 변성기가 오면서 목소리가 약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첼로가 더 좋아졌다. 피아노도 중학교 3학년까지 레슨을 받았지만 첼로만이 정명화의 음악인생에 탑승할 수 있었다. 첼로를 시작한 지 2년 쯤 뒤 정명화는 하이페츠, 루빈슈타인과 백만 달러 트리오를 이뤘던 첼리스트 그레고르 피아티고르스키의 연주를 듣게 된다. 당시 가장 큰 홀이었던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그의 인간적인 첼로 음색은 가슴속으로 파고들었고 나중에 그녀는 남부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피아티고르스키를 직접 사사한다. 그녀는 피아티고르스키로부터 '납득할 수 있는 자연스럽고 쉬운 소리, 하나의 대상을 다르게 표현하는 법, 음악가로 스스로 설 수 있는 가르침'을 배웠다. 마리아 칼라스의 음성과 피아티고르스키. 정명화의 수업시대를 이해하는 두 키워드이다.

이번 40주년 기념 연주회를 위해 정명화가 선택한 곡은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슈트라우스의 첼로 소나타, 그리고 바버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이다. 18세기의 슈베르트의 곡과, 19세기의 슈트라우스, 20세기의 바버 등 각 시대를 대표하는 곡들이다.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는 아름다운 선율과 짙은 우수가 느껴지는 곡으로 원래 ‘아르페지오네’라는 악기를 위해 작곡된 곡이라 높은 음을 많이 사용한다. 이를 현대의 첼로로 연주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기교를 필요로 한다. 슈트라우스의 첼로 소나타는 슈트라우스 초기 작품 가운데서 작품성이 가장 뛰어난 곡 중 하나로 곡 전체를 흐르는 서정성이 아름답다. 바버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는 현대 곡임에도 불구하고 고도의 서정성과 낭만성을 지녀 첼로 연주가들이 가장 애호하는 현대 음악작품 중 하나이다.

“연주가들은 대개 두 부류로 나뉩니다. 문학을 더 좋아하는 쪽과 수학을 더 좋아하는 쪽, 나는 수학을 좋아했어요. 건축과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죠. 여기 와서도 가구들의 배치를 유심히 보고 있었어요. 똑같은 꽃도 공간 배치와 꽃병에 따라 달라지거든요. 생각해 보면, 내게 음악은 리노베이션, 즉 집을 고치는 것과도 같았어요. 완벽이란 없습니다. 끊임없는 뉘앙스의 추구죠.”

첼로와 동고동락한지 52년, 프로로 데뷔한지 40년, 40년 동안 정명화가 끊임없이 추구해온 뉘앙스는 어떤 모습일까. 시간이 지날수록 큰 무대보다는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작은 무대가 많이 끌린다는 정명화의 이번 연주회는 40년 동안 음악의 멋과 혼을 담아온 한 연주가의 뒷모습, 그리고 실루엣을 보여줄 것이다. 한편 이번 세계무대 데뷔 40주년 기념 연주회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함께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김대진이 피아노 반주를 맡았다. 2009년 4월 22일, 40주년을 축하하는 따뜻한 동료애를 과시하는 피아니스트 김대진과 첼리스트 정명화의 앙상블을 보면 이런 모습이 떠오르지 않을까. 1971년 동생 정명훈을 반주자로 대동하고 우승을 거머쥔 제네바에서의 쾌거, 그리고 그로부터 각각의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청중의 뇌리를 스칠 것이다.

(출처 : 예술의전당 월간정보지 2009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