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진의 음악교실>의 지휘자 김대진
“미래의 클래식 청중을 키우는 게 제 임무고 보람이죠”


지난 5월 17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청소년음악회 <김대진의 음악교실>.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아주 진지하게 현대음악가 스트라빈스키(1882~1971)의 발레곡 '페트루슈카'를 설명하고 있었다.

"가엾은 인형 페트루슈카는 결국 무어왕자에게 살해당합니다. 죽은 그가 눈 속에 처박히고 군중들은 넋을 잃고 쳐다보죠. 그럼 스트라빈스키는 페트루슈카의 죽음을 어떻게 표현했을까요. 지금부터 탬버린 연주자가 '그 순간'을 들려줄 겁니다."

김 교수의 말이 끝나자 연주자 한 명이 무대 정면으로 나와 탬버린을 바닥에 '툭' 떨어뜨린다. 고작 한 음? 뭔가 애잔하고 섬뜩한 선율을 기대했던 관객들은 어이가 없어 폭소를 터트린다. 그러자 김 교수는 정색하며 이렇게 말한다. "오늘 저는 여러분을 다시 봤어요. 페트루슈카가 죽었는데 웃다니요." 그의 재치 있는 입담에 청소년 관객들의 까만 눈동자들이 반짝거린다. 부모 손에 끌려와 억지로 앉아있던 아이들도 어느새 현대음악의 매력에 '쏙' 빠져들게 된다. 김 교수의 설명을 곁들이면 낯설고 추상적인 선율인 현대음악도 '술술' 풀린다. 그는 난이도를 좀 더 높여 현대음악의 창시자인 쇤베르크(1874~1951)의 '12음기법'을 쉽게 설명했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클래식 음악의 본질을 깨우쳐주는 <김대진의 음악교실>이 벌써 5년째 관객과 만나고 있다. 그는 지휘자 금난새와 음악평론가 홍승찬 등에 이어 2004년 4월부터 이끌고 있다. 첫 해에는 독주와 2중주, 3중주, 협주곡 등 다양한 연주형태의 매력을 알려줬다. 2005년에는 '특별한 악기와 음악의 구성요소', 2006년 '바로크에서 현대까지 서양음악사', 2007년 '고전음악의 이해'라는 주제로 강의했다. 올해 그가 꺼내든 주제는 현대음악. 다소 불편하게 느껴지던 현대음악과 친해지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콘서트 시리즈로 연말까지 6회 마련된다. 먼저 5월 17일 첫 순서로 스트라빈스키의 대표작 '페트루슈카' 등을 들려주고 그의 삶을 조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난 6월 21일에 열린 두 번째 음악교실은 작곡가 말러(1860~1911)의 거대하고 철학적인 교향악 선율을 이해하는 자리였다. 김 교수는 말러의 교향곡 제2번, 제4번, `대지의 노래의 주요 악장들을 들려주며 말러의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설명했다.


다가오는 7월 19일 예정된 세 번째 음악교실의 주제는 '발레 속의 두 마리의 새: 백조의 호수와 불새'. 차이코프스키(1840~1893)의 발레 모음곡 '백조의 호수'와 스트라빈스키의 발레 모음곡 '불새', 엘가(1857~1934)의 첼로 협주곡 등을 들려준다.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는 고전 발레의 대명사. 낮에는 마법에 걸려 백조로 변하는 오데트 공주와 그녀를 구하려는 지그프리트 왕자, 이들을 지배하려는 악마 로트바르트의 싸움이 주된 줄거리다. 푸르른 기운이 감도는 호숫가에서 펼쳐지는 하얀 백조들의 섬세하고 우아한 날갯짓, 운명과 사랑에 대한 인간 내면의 고민이 애상적이고 아련한 선율 속에 펼쳐진다. 1910년 파리 오페라극장에서 초연한 발레곡 '불새'는 스트라빈스키의 출세작. 러시아에서 건너온 28세의 젊은 작곡가인 그가 유럽 클래식 무대에서 자리잡는데 결정적 도움을 줬다. 러시아 민화를 소재로 담은 이 작품은 불새의 도움으로 마왕에게 붙잡힌 왕녀들을 구하기까지 과정을 격정적인 선율로 표현했다. 1919년 62세의 엘가가 쓴 첼로 협주곡은 만년의 작품답게 중후하다. 풍부하고 변화가 넘치는 선율과 짙은 색채의 화성은 거장의 열정과 서정, 우수를 깊이 있게 녹였다. 가슴 속으로 침잠하는 묵직하고 힘찬 관현악 선율은 첼로 협주곡의 미학을 고스란히 들려준다. 이후 <김대진의 음악교실>은 '쇼스타코비치는 누구인가?'(10월 18일), '4분의 3박자의 건배'(11월 22일), '피아노 오케스트라'(12월 20일) 등의 주제로 학생과 클래식 음악 입문자 등을 맞는다.

1인 5역 김대진
"하루가 짧네요"

"도대체 왜 그렇게 바쁘게 사시나요?"
지난 5월 1일 수원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겸 음악감독에 취임한 김대진은 요즘 이 질문을 피해갈 수 없다. 교육자이자 연주자, 실내악단 금호아트홀 체임버뮤직소사이어티 음악감독, 음악해설가로도 모자라 직책을 하나 더 얹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는 어느 하나라도 대충하는 법이 없다. 외국 유학 없이도 손열음과 김선욱을 세계적 권위의 국제콩쿠르에 입상시킨 훌륭한 스승이자 국내 음악계 기둥을 떠받치는 중견 피아니스트다. 또 그가 예술의전당과 손잡고 진행하는 청소년음악회 <김대진의 음악교실>은 5년째 객석이 꽉 차고 있다. '클래식계 멀티맨' 김 교수는 '1인 5역'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 오전에 수원시향 사무실에 갔다가 오후에는 학교에서 레슨, 퇴근 후에는 연주 연습에 몰입하는 일상을 소화하고 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새로운 일에 도전하며 인생의 전환기를 맞고 있는 그를 서초동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만났다.

5년째 예술의전당 청소년음악회 <김대진의 음악교실>을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군요.
"얼마 전 한 중학생에게서 이메일을 받았어요. 5년 전 초등학생 때 음악교실에 처음 왔는데 중학생이 되어서도 계속 오고 있다네요. 클래식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는 학생들을 볼 때 참 보람을 느낍니다. 하지만 편지를 읽고 나니 '이제 늙어가는구나'라는 생각이 잠시 들더군요."

올해 <김대진의 음악교실>의 주제를 현대음악으로 잡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현대음악은 음악회에서조차 자주 연주되지 않아요. 하지만 저는 현대음악을 자꾸 들려줘야 할 책임감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우리 시대 음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현실과 사회를 선율에 녹인 자화상이니까요. 사실 모차르트나 슈베르트보다 현대음악이 더 어렵고 복잡할 수밖에 없어요. 현대 사회가 더 복잡하고 살기 팍팍하잖아요. 현대음악의 어법은 훨씬 더 직접적이어서 이해하기도 쉬워요. 프로코피예프의 '전쟁 소나타'는 폭탄이 터지고 건물이 파괴되는 소리를 그대로 담았어요. 우리 시대 소리이기 때문에 오히려 쉽게 정복할 수 있어요."

청소년음악회는 왜 중요한가요.
"깊이 있는 '미래' 클래식 청중을 키우는 일이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청중의 수준은 계속 변화할 수 있어요. 국내에서 청소년음악회가 처음 시작되던 1980년대만 해도 프로그램 책자로 비행기를 접어 날리는 아이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이제는 현대음악가인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슈카'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됐으니 굉장한 변화가 온 셈이죠. 우리나라에서 음악 영재들이 많이 나오고 수준이 높아졌으니 거기에 걸맞은 청중을 키워야 합니다."

청중을 웃기면서 음악을 전달하려고 애쓰는 여느 해설가와는 달리 교수님은 다소 엄숙하게 설명을 하시더군요. 그 점이 오히려 신선하고 인상적이었습니다.
"딱딱한 강의 같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어요. 5년 전 처음 해설 음악회를 시작할 때 저는 '흥밋거리'가 아니라 '음악의 본질'을 이야기하려고 했어요. 재미있는 주변 이야기로 음악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유지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죠. 음악의 본질이라는 어렵고 무거운 주제를 꺼내면 분명 예매율이 떨어질 것이라고 걱정했는데 다행히 전혀 그렇지 않더군요. 소나타 형식이나 조성 바꿈 등 기본 지식을 알게 되면 음악이 더 즐거워진다고 생각합니다. 세월이 흘러 20대, 30대가 되어도 연주회에 올 수 있는 청소년 클래식 팬을 만드는 게 제 목표입니다."

2005년 수원시향 정기연주회에서 지휘자로 데뷔했을 정도로 이 교향악단과 인연이 깊다고 들었습니다. 수원시향에서 기대하는 '김대진 효과'를 어떻게 실현시킬 것인지요.
"기획력으로 승부하겠습니다. 수원시향이 나한테 뭘 원하는지 확실히 알고 있어요. 수원시향은 지금 전환점이 필요해요. 우선 수원시민들에게 사랑받고 관심을 끄는 악단으로 만들 겁니다. <청소년 음악교실>, <야외 음악회>, <찾아가는 음악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백건우 선생님이나 김선욱 등 유명 연주자를 수원 무대에 올리고 싶어요. 선욱이와는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전곡 시리즈를 준비 중입니다."

지휘자와 연주자, 교육자, 실내악 리더 중 어떤 일이 가장 적성에 맞나요?
"피아노에 앉아 연습할 때 제일 편합니다. 37년 동안 해온 일이라 몸에 맞는 옷을 입은 기분이죠. 피아노 선율에 빠져들고 취하는 게 기쁩니다. 지휘는 연주와 정반대의 일입니다. 지휘는 다른 사람들이 편안하게 연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죠. 단원들의 개성과 재능을 최대한 살려주는 지휘자가 되고 싶어요."

어떤 지휘자를 닮고 싶나요? 선생님의 지휘 철학은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토스카니니나 카라얀은 제왕적인 마에스트로였죠. 하지만 저는 절대로 단원들 위에서 군림하고 싶지 않아요. 요즘 음악계 트렌드도 바뀌었고요. 베를린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뉴욕필하모닉오케스트라 단원들 개개인이 솔리스트로 존중받고 활약하고 있어요. 단순히 큰 단체의 일원이 아니라 개성 있고 자기주장이 분명한 사람들이 모여서 음악을 만들죠. 저는 단원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자기 색깔을 펼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교향악단은 바로 개성의 조화에요. 수원시향 단원들이 각자 갖고 있는 굉장한 능력을 끄집어내서 아름다운 선율을 빚는 게 제 의무죠."

(출처 : 예술의전당 월간정보지 2008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