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향악축제의 산 증인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박은성 음악감독


“최다 지휘가 뭐가 중요하다고 그래요.”

제20회 교향악축제 개막을 앞두고 만난 지휘자 박은성(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은 손부터 내저었다. 그는 역대 교향악축제에서 가장 여러 번 지휘봉을 잡았다. 1993년과 1997년을 제외하고 빠짐없이 참여했다. 개막 연주를 맡은 올해까지 합하면 총 18회. 교향악축제의 산 증인인 셈이다. 인터뷰 또한 그런 이유로 마련됐다. 하지만 정작 그는 그런 사실에 의미를 두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그의 표정이 밝아진 것은 “교향악축제에서 참 많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셨더군요”라는 이야기를 했을 때였다. “그 얘길 해주니 정말 반갑네요. 6개 오케스트라와 교향악축제에 나왔죠. 상임을 맡은 오케스트라와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4곳은 객원으로 지휘했습니다. 자랑스럽고 흐뭇한 동시에 책임감을 느끼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교향악축제에서 그는 부산시립교향악단(2회) 서울시립교향악단(2회) 서울아카데미심포니오케스트라(2회) KBS교향악단(3회)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1회) 수원시립교향악단(7회)을 지휘했다.

교향악축제의 역사를 관통하고 있는 그는 교향악축제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1회 때와 지금의 수준을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교향악축제를 통해 한국 교향악계가 골고루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연주 수준과 청중 수준의 향상에 레퍼토리 확장까지, 그야말로 지대한 공을 세웠죠. 수원시립교향악단의 경우 교향악축제를 본 일본 관계자를 통해 일본 초청 연주를 하기도 했어요. 앞으로 잘 운영한다면 아시아 교향악계 중심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뉴욕의 링컨센터와 카네기홀, 비엔나의 무지크페어라인과 빈필하모닉오케스트라처럼 한국하면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를 떠올리게 되는 거죠. 파생효과도 엄청나겠지요.”

칭찬과 장밋빛 전망 뒤에는 쓴 소리도 이어졌다. 특히 교향악축제를 경쟁의 장으로 여기는 인식에서 많은 문제가 비롯된다고 지적했다. “콩쿠르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한 지방 교향악단을 보면 정단원 20명에 객원 연주자 60명이 와요. 그것을 그 오케스트라의 소리라 할 수 있겠습니까? 교향악축제만을 위해 몇 달간 연습해서 오는 경우도 있는데 솔직히 프로 오케스트라라고 할 수 없죠. 자치단체들의 경쟁의식이 과열돼 음악평론가의 글 한 줄에 지휘봉이 날아간 경우도 여럿 있었습니다.”

교향악축제와 함께 한 17년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물었다. “코리아심포니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섭섭해할지도 모르겠는데…. 하하.” 웃음 뒤에 따라온 답은 수원시립교향악단과 함께 한 브루크너 도전이었다. 수원시립교향악단은 박은성 의 지휘로 교향악축제에서 브루크너 교향곡 3ㆍ4ㆍ6ㆍ8번을 연주했고, 이는 교향악축제 인기 프로그램으로 각광받았다. 오스트리아 린츠에 있는 브루크너 오케스트라 바이올린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의 모든 버전을 연주한 경험이 있는 박은성 은 국내에 올바른 악보조차 없던 1985년 브루크너 작품의 지휘를 시작했을 만큼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브루크너를 요리하는 나만의 비법이 있으며 수원시립교향악단 또한 브루크너 연주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고 자부심을 드러낸 그는 “지난해 12월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로 옮기면서 브루크너 전곡 연주를 완성하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아쉬울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7년간 수원시립교향악단을 이끌었던 그는 올해 교향악축제에서는 객석에서 수원시립교향악단의 연주를 지켜볼 예정이다. 이번에 수원시립교향악단을 지휘하는 것은 피아니스트 김대진.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를 지휘하며 협연하고, 베토벤 교향곡 7번을 지휘하는 이색 무대다. 박은성 은 서울대 강사 시절 김대진 에게 지휘를 가르쳤고, 2005년 공식 데뷔 무대도 마련해준 인연이 있다.

이제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할 차례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신임 음악감독으로서 그는 어떤 비전을 갖고 있을까.

“사람들은 ‘세계적 오케스트라로 도약하겠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데 제 답은 그게 아닙니다. 오랫동안 음악감독 없이 지낸 단원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위로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입니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 자리는 10개월간 비어있었고, 상임지휘자는 무려 8년간 공석이었다. 그가 취임사 때 단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음악감독이 되겠다고 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그가 밝힌 두 번째 목표는 정체성 확립.

“국립오페라단, 국립발레단, 예술의전당이 제작하는 오페라와 11시 콘서트 등 각종 공연의 반주를 도맡아 하고 있으니 한국 음악의 중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예술의전당 상주 단체일 뿐 전속은 아니고, 국립 단체의 일을 하고는 있지만 국립 단체는 아닌 애매한 위치에 있습니다. 그래서 방향을 잡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박은성과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가 선택한 올해 교향악축제 레퍼토리에 눈길이 갔다. 폴란드의 생존 작곡가인 고레츠키(1933~)의 교향곡 3번 ‘슬픔의 노래’. 현대작품으로는 이례적으로 빅히트를 기록한 곡이지만 국내에서는 거의 듣기 힘든 곡이다. 전쟁의 상처를 담은 ‘슬픔의 노래’의 빠르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줄곧 렌토(lento, 느리게)이며, 피날레의 세기는 피아노(piano, 여리게)다. 열광적인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화려하고 웅장한 피날레와는거리가 멀다. 그 역시 “대성공 아니면 대실패로 끝날 위험한 선택임을 알고 있다”고 했다. “17회를 하면서 박수는 많이 받아봤으니 이제는 관객을 위한 진정한 서비스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는 게 위험한 도전에 나선 이유다. 그는 “그나마 교향곡을 1부에 배치하는 방식으로 약간의 안전장치는 마련했다”며 웃었다. 2부 순서는 김남윤(바이올린)과 이경숙(피아노)이 협연하는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과 차이코프스키 ‘로미오와 줄리엣 서곡’이다. 앙코르곡으로는 예술의전당 20주년, 교향악축제 20회를 축하하는 의미로 쇼스타코비치의 ‘축전 서곡’을 준비했다.

1970년 지휘자로 데뷔했으니 그가 포디엄에 선 세월은 40년에 가깝다. 한국지휘자협회 회장도 맡고 있는 그는 지휘에 대해 어떤 철학을 갖고 있는지 궁금했다.

“지휘자는 무책임할 수도 있는 사람이에요. 연주자 중 유일하게 소리를 하나도 안 내면서 먹고 살죠. 그런데 박수도, 월급도 제일 많이 받아요. 그래서인지 지휘자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는 경우가 보입니다. 음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쇼를 하고 바디 랭귀지를 통해 청중을 사로잡는 일에 신경을 쓰는 거죠. 저의 신념은 악보에 충실하자는 것이고, 제 임무는 작곡가의 의도를 분명하게 전달하는 겁니다.”

기본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도전정신을 더불어 지닌 이 지휘자의 모습은 교향악축제가 걸어온 길과도 맞닿아 있었다.

(출처 : 예술의전당 월간정보지 2008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