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욱과 예술의전당, 두 스무살의 만남


피아니스트 김선욱을 인터뷰하면서 든 생각 하나. 예술의전당이 없었다면 오늘의 김선욱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아마 그러기 힘들었을 것 같다. 김선욱에게 예술의전당은 살아있는 교실이자, 놀이터였다.

1988년생으로 올해 나란히 스무살이 된 김선욱과 예술의전당이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김선욱이 초등학교 2학년 때. 그는 공연보다는 전단지와 티켓 모으는 게 좋아 예술의전당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지금도 그런데, 전단지나 브로슈어, 팜플릿 모으는 걸 좋아했어요. 집에 가면 이만큼(두 팔을 1m가량 벌리며) 있어요. 티켓도 크레디아는 크레디아 대로 모으고, 티켓링크, 인터파크도 따로 모으고요. 그땐 전산통합이 안돼서 티켓이 다 달랐거든요. 크레디아 티켓 진짜 멋있었는데."

짐작하다시피 그는 수집광이다. 지하철 표도 버리지 않고 모았다. 요즘은 일주일에 2~3개의 DVD를 산다. 물론 모두 클래식이다. CD는 1500장 정도. 역시 거의 모두 클래식이다. 요즘은 둘 데가 없어서 바닥에 쌓아놓고 있다. 김선욱이 예술의전당과 더욱 가까워지게 된 건 초등학교 5학년 때,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에 다니게 되면서부터였다.

"토요일에는 학교 빼먹고 글러브와 공을 챙겨서 예술의전당으로 왔어요. (음악당과 한가람디자인미술관 사이 공터를 가리키며) 저기서 야구를 했거든요. 그때 같이 놀던 친구들은 지금 다 유학가고 없지만요."

예비학교에 다니면서부터는 공연보다 리허설을 많이 봤다. 한국예술종합학교(예비학교 포함) 학생들에게 전수되어 내려오는 비법으로 콘서트홀 안으로 잠입했다. 베를린필하모닉오케스트라나 빈필하모니오케스트라 등 값비싼 공연들은 이런 방법을 통해 공짜로 봤다.

"뒤로 돌아가면 방송차 들어가는데 있거든요. 거기로 들어가서 합창석으로 가면 2층 박스석하고 연결됐죠. 지금은 문을 교체해서 열 수 없지만 그때는 가능했거든요. 오페라하우스도 몰래 백스테이지로 들어가서 공연을 보곤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때 예술의전당의 경비가 허술했던 게 참 고맙게 느껴질 정도다. 2001년 1월 울산시립교향악단 신년음악회 피아노 협연으로 예술의전당 무대에 처음 서기까지, 김선욱의 꿈은 그렇게 영글어갔다. 그는 이제 제대로 빚을 갚을 수 있게 됐다. 예술의전당 홍보대사를 맡은 것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놀이터 가듯 자주 오던 곳이라 더욱 명예롭다""해외 공연을 가서도 다른 아티스트들에게 예술의전당 홀을 자랑해, 서울에 와서 전당을 방문하게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김선욱을 인터뷰하면서 또다른 생각 하나. 한예종 김대진 교수가 없었다면 오늘의 김선욱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아마 그러기 힘들었을 것 같다. 김선욱 자신도 그렇게 믿고 있다.

"정명훈, 장한나, 장영주는 초등학교 때 저의 우상이었어요. (그들 모두 유학파들인데) 유학 가고 싶다는 생각을 왜 안 해봤겠어요. 철없이 엄마한테 달력을 가리키며 ‘두 달 후 이날이 유학 가는 날’이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예비학교 들어가고 나서 그런 생각이 싹 없어졌어요. 그때 유학을 갔다면, 그래서 김대진 선생님을 안 만났다면 아마 지금의 저는 없었을 거예요."

그는 "외국의 유명한 선생님들은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이 너무 많고 자신들도 바쁘기 때문에 제자를 돌볼 수 없다""정작 학생들은 배울 기회가 적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의 우리 선생님들은 콩쿠르 심사 다녀오느라 학교를 비웠을 경우, 늦게까지 남아 밀린 레슨을 해주신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음악 교육 환경은 우리가 더 낫다"고 말했다. 순수 국내파 김선욱은 유학을 건너뛰고 단박에 월드 스타로 발돋움하고 있다. 3월부터 세계적 클래식 아티스트 매니지먼트사인 아스코나스 홀트사 소속으로 활동하게 된다.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 다니엘 바렌보임, 다니엘 하딩, 구스타보 두다멜, 사이먼 래틀, 주빈 메타, 정명훈, 피아니스트 예프게니 키신, 바이올리니스트 핀커스 쥬커만, 첼리스트 요요마, 장한나,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 등 특급 아티스트들과 한솥밥을 먹게 된 것이다. 그가 한국에서 몰래 훔쳐봤던 베를린필하모닉오케스트라, 빈필하모니오케스트라, 보스턴심포니오케스트라 등 최고의 오케스트라도 이 회사 소속이다.

그는 이 회사 소속 최연소 아티스트로서 이들과의 협연 기회도 많아질 것이다. 이를 위해 오는 7월부터는 영국으로 거주지를 옮길 계획이다. 영국은 물론, 프랑스, 미국, 캐나다, 아이슬란드, 스위스, 벨기에, 체코 등에서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거나 독주회를 열 계획이다. 내년 봄까지 40여 차례의 공연으로 일정이 꽉 차있다.

"얼마 전 지나가다 다니엘 바렌보임을 만났어요. 그런 사람이 앞에 앉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자극이 많이 됐어요. 앞으로 세계 유명 홀에서 연주해 보고 싶고, 유명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싶고, 여러 지휘자나 음악가들과 만나서 얘기도 나누고 싶어요."

그런 와중에도 "틈나는 대로 한국에 들어와 김대진 선생님에게 레슨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 금호아시아나에서 마련해준 비행기 티켓이 아직 4년 남아있어 오가는 비용을 아낄 수 있다. 연습벌레가 아니냐고 묻자 "미니멈 3시간, 맥시멈 5시간이에요. 정말 연습 많이 하고 싶어요."라고 답했다. 대신 집중을 심하게 해서인지 연습할 때 땀을 엄청나게 흘린다. 지난 설 연휴 기간에도 매일 학교에 나가 연습했다.

"태권도는 궁극적으로 검은 띠가 목표잖아요. 분명하죠. 그런데 음악은 끝이 안 보이는 거에요.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돼야지’ 이런 생각해 본 적은 별로 없어요. 그냥 정명훈처럼 되고 싶다. 콩쿠르에 나가서 잘 하고 싶다. 매니지먼트사에 속하고 싶다. 그게 꿈이었어요."

약관의 나이에 그는 세 가지 목표 중 벌써 두 가지를 이뤘다. "지금까지 너무나 운이 좋았다"라고 답하면서 "내가 원하면 모두 이뤄진다고 믿어요. 믿음대로 아직까지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어는 것 같아요.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지난 15일 김선욱은 예술의전당 20주년 개관 기념음악회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을 연주했다. 넘치는 폭발력과 따뜻한 감성을 한 몸에 지닌 야누스적인 연주였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이처럼 훌륭한 연주를 서울 시내에서 접할 수 있다니. 김선욱과 예술의전당, 두 스무살에게 새삼 뜨거운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출처 : 예술의전당 월간정보지 2008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