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발레리나
국립발레단 예술감독 최태지 단장


7년이라는 세월도 발레의 열정을 식히지 못했다. 사회적으로는 성공한 여성 CEO로 비쳤지만 가슴 한켠은 늘 답답했다. 지난해에는 몸이 아파 입원까지 했다.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지?” 그러자 더욱 더 발레가 그리웠다.

지난 96년부터 2001년까지 국립발레단을 이끌었던 발레리나 최태지가 국립발레단 제6대 단장겸 예술감독으로 그리던 ‘친정’으로 돌아왔다. 국립발레단 수장에서 물러난 뒤 정동극장 극장장을 맡아왔지만 9살 때부터 30년 넘게 몸 담았던 발레계로 귀환은 꼭 7년 만이다.

“저는 항상 ‘인생은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서 헤매는 여행’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래서 국립발레단을 떠날 때도 ‘그냥 물이 흘러가는 데로 살아야야 되겠다’고 스스로 노렸했어요. 그런데 작년에 ‘이제는 아니다, 이렇게 가는 것은 아니다’ 라는 것을 딱 느꼈어요. 그래서 몸이 그렇게 아팠나봐요.”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4층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실에서 만난 그에게 복귀 소감을 묻자 “더 늦기 전에 저 자신에게나 후배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싶었다”면서 “지금 발레계의 가장 중요한 과도기에 (필요한 사람은) 저밖에 없다고 생각했다”고 수줍게 웃었다.

그는 “7년이라는 세월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고 털어놓았다. 특히 그는 “관객 입장에서 국립발레단을 바라보았던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앞으로 차분하게 문제점을 뜯어보면서 국립발레단의 주체성과 존재 이유를 만들려고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전에 한 것들은 모두 잊고 백지에서 다시 시작하겠다”고 덧붙였다.

최 단장은 1996년부터 2001년까지 국립발레단을 이끌면서 국립발레단의 재단법인화를 이뤄냈고, 현재까지 많은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해설이 있는 발레’ 프로그램 제작과 스타 마케팅 시스템을 도입 등을 시도해 한국 발레에 새 바람을 불어넣었다. 특히 현재 파리오페라발레 솔리스트로 활약하는 김용걸, 네덜란드국립발레단 주역무용수 김지영, 발레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우는 러시아 ‘브누아 드 라 당스상’을 수상한 김주원 등 한국이 자랑하는 발레 스타들을 키워냈다.

앞으로 국립발레단이 어떤 변화가 있을까 궁금했다. 그는 발레의 ‘대중화’ ‘명품화’ ‘세계화’ 등 3가지 큰 목표를 끄집어냈다. 그러면서 ‘아이디어 은행’이라는 별명답게 공익사업 활성화와 해설발레의 상설화, 발레학교 설립, 무용수 처우개선 등 오랫동안 고민했던 것들을 쏟아냈다.

외부에서 보아왔던 국립발레단의 문제점은 무엇입니까?
"그냥 발레 팬으로서 제가 보고 느낀 것은 국립발레단이 언제 어떤 공연을 하는지에 대한 정보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적어도 연간 스케줄 정도는 있어야 발레 팬들이 국립발레단에 좀더 관심을 가질 수 있지 않나 생각해요.”

국립발레단이 앞으로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방향은 무엇인가요?
"대중화, 명품화, 세계화입니다. 이 세 가지는 국립발레단이 항상 가져가야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요즘 대중들은 클래식 발레보다는 뮤지컬을 더 선호하고, 관객들의 마음도 조금씩 클래식 발레에서 멀어져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분위기에서 ‘대중화를 어떻게 이끌어갈 수 있을까’가 큰 과제예요.
명품화는 제가 ‘해설이 있는 발레’를 만들었지만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라는 고급스러운 공연장에는 정말 명품이라고 내세울 만한 작품들을 올리고 싶다는 것입니다. 세계 어디에서도 관객들이 오셔서 ‘한국의 국립발레단이 이렇게 명품을 가지고 있구나’라고 느낄 만한 레퍼토리를 무대에 올려야죠.
제가 항상 고민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세계화인데, 이제는 우리 국립발레단만이 가질 수 있는 창작발레로 세계에 나가야 될 시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 발레의 세계화를 겨냥해 염두에 두고 있는 창작발레는 어떤 것입니까?
"제가 지난 번 단장 시절부터 고민해왔던 문제입니다. 그 때는 국립발레단이 내세울 만한 레퍼토리가 없어서 유리 그리가로비취 선생님의 「백조의 호수」와 「호두까기 인형」,「스파르타쿠스」를 가져왔지만, 내년이나 내후년에는 세계에 갈 수 있는 창작발레를 꼭 만들고 싶습니다. 우리와 역사가 비슷한 베이징 국립발레단도 영화감독 장이모의 영화를 각색해 만든 <홍등>이라는 세계적인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취임하시면서 발레학교 설립을 누누이 강조하셨는데?
"다른 나라에 비하면 너무 늦습니다. 무용수는 어떤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았느냐가 재산인데 우리나라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각각 다른 선생님에게 배우고 있습니다. 프랑스 파리 오페라발레단이나 러시아 볼쇼이발레단, 영국 로열발레단,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 중국 베이징발레단 같은 세계적인 발레단을 보세요. 모두 발레학교가 만들어진 다음에 발레단이 창단됐습니다. 그리고 국립발레단에서 김주원이나 김용걸 같은 세계적인 무용수들이 은퇴하고나서 후배들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요즘 다른 공연예술 분야에 비해 발레가 침체되고 있다는 우려가 많습니다.
"한국 무용수들의 대우와 사기를 높이도록 노력해야 할 시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김주원 같은 최고 무용수들이 연봉이 5천만원도 안된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죠. 우리 톱스타가 그 정도밖에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앞으로 우리 발레계의 존재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남자 무용수 병역 문제’도 그래요. 국제 콩쿠르 입상자에게만 병역 혜택을 준다면 가득이나 남자 무용수가 부족한데 앞으로는 더 심해질 거예요. 또 그 애들이 2년씩이나 군대에 다녀온 뒤에 제 기량을 다시 찾는데는 최소한 5년 이상 걸려요. 이대로 간다면 5년이나 10년 후에는 왕자 없는 「백조의 호수」를 보게 될지도 몰라요”


그에게 21세기 현대 발레의 흐름을 물었다. 그러자 “테크닉만이 아닌 드라마틱한 발레여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수석 발레리나로 활약하고 있는 강수진을 예를 들었다.
“강수진을 보면 라인이나 테크닉보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나요? 발레가 언어예술이기도 하지만 수진이가 무대에 서 있으면 마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느껴요. 우리 관객들도 그런 것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드라마틱한 발레는 창작발레를 만들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 국립발레단 단원들도 그에 대비해서 변신하고 준비할 테니 지켜봐 달라”고 밝게 웃었다.

재일동포 2세로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최태지 단장은 프랑스와 미국 등에서 발레를 배운 뒤 1970년대 일본 가이타니 발레단 수석무용수로 활약하다 1987년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로 특채되면서 국내 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96년 30대 후반의 젊은 나이로 국립발레단장을 맡아 ‘발레 대중화’란 기치를 내걸고 파격적인 실험을 추구해 나갔다. ’모전여전’으로 큰딸 최리나가 지난해 러시아 보리스 에이프만 발레단에 입단해 대를 이어 발레리나의 길을 걷고 있다.

(출처 : 예술의전당 월간정보지 2008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