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하지만 만나고 싶은, 맥베스의 여인
2008 예술의전당 개관20주년 기념 최고의 연극시리즈 I

「레이디 맥베스」의 연출가 한태숙


“다시 한 번 무대에 올릴 때가 됐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제의가 왔네요. 세월이 흐르면서 배우들도 원숙해졌고 저도 작품을 제대로 보강할 준비가 됐어요. 머릿 속에 새로운 구상이 가득합니다.”

「레이디 맥베스Lady Mecbeth」의 연출가 한태숙은 예술의전당 개관 20주년 기념 ‘최고 연극시리즈’의 첫 테이프를 끊는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그의 작품은 예술의전당이 연극전문가와 관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다시 보고 싶은 연극’ 1위에 선정돼 오는 3월 21일부터 4월 13일까지 토월극장 무대에 오른다.

`맥베스’가 아닌, `그의 여인’을 향한 시선

한태숙이 직접 각색·연출한 ‘레이디 맥베스’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맥베스』를 맥베스 부인을 중심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지난 1998년 초연 당시 밀가루 반죽을 이용한 물체극과 음악의 협동작업을 통해 독특한 이미지를 선보이면서 연극계에 화제를 몰고 왔다. 이후 네 차례나 재공연을 거듭했고 2002년에는 폴란드에서 열린 콘탁 연극페스티벌에 공식 초청되기도 했다.

줄거리는 원작 그대로다. 권력욕을 키우던 맥베스가 결국 왕을 시해하고 권력을 차지하지만 죄의식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파멸한다는 내용. 하지만 맥베스가 아니라 그의 아내인 맥베스 부인이 작품을 이끌고 나간다. 맥베스 부인이 남편을 부추겨 살인을 저지른 뒤에 느끼는 불안과 혼돈의 감정은 이영란의 오브제 아트, ‘미연 & 박재천’의 타악 연주와 만나 독특한 공감각적 심상을 이끌어낸다. 특히 진흙덩이가 던컨왕으로 살아나고 밀가루 반죽이 뱀으로 돌변해 목을 휘감는 장면은 한 번 보면 절대 잊을 수 없을 만큼 인상적이다.

레이디 맥베스 역은 초연부터 함께 해온 서주희가, 궁중전의와 맥베스 역은 두 번째 공연부터 참여한 정동환이 맡을 예정이다. 한태숙은 “다른 캐스팅은 아예 생각도 안 했다”“초연 당시에는 배우들이 배역에 비해 젊은 편이었는데 이제야 딱 맞는 나이가 됐다”고 말했다.

10년의 세월, 5번의 재공연…진화하는 작품

「레이디 맥베스」는 이번이 다섯 번째 공연이다. 지난 공연들과 비교해서 어떤 점이 달라졌을까.

“소극장에서만 하던 작품을 중극장에 가져오면서 객석을 무대 위로 올렸어요. 방화벽을 내려 사방이 막힌 무대를 만든 다음에 그 안에 ‘ㄷ자’ 형태로 총 300석의 객석을 설치할 계획이에요. 방화벽은 마지막 장면에서 레이디 멕베스가 죽어갈 때 종소리와 함께 천장으로 올라가요. 극은 어두컴컴하고 깊은 공간(본래 객석이 있었던 자리)의 2층 발코니에서 시종이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로 끝맺을 생각이에요.”

이밖에 작품의 하이라이트에서 뱀을 형상화했던 밀가루 반죽은 전분으로 대체됐다. 딱딱하게 굳었다가 충격이 가해지면 순식간에 액체로 변하는 전분의 특성을 활용하려는 의도다. 2002년 공연 당시 깊은 인상을 줬던 얼음 조각은 이번에 사용되지 않지만 대신 다른 새로운 효과들을 선보일 계획이다. 음악은 타악을 기본으로 하되 전통적인 느낌에 재즈적인 색채를 가미해 색다른 분위기를 이끌어 낸다는 계획이다.

「레이디 맥베스」는 내 연극의 전환점

한태숙은 「레이디 맥베스」가 자신의 연극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작품이라고 강조한다. “무대에서 뭐든 해도 된다”는 자신감과 용기를 줬기 때문이다.

“먹고 살기 위해 딱 10년동안 방송작가를 하고 연극판으로 돌아왔어요. 연극을 계속한 이들보다는 많이 늦어진 셈이라, 창작 욕심은 많고 뭔가 갈급한 상태였죠. 하지만 초청 받은 무대에서는 내 멋대로 할 용기가 없었어요. 저를 믿어준 제작자 덕분에 「레이디 맥베스」라는 전환점을 마련한 거죠.”

물론 과정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당시만 해도 연극과 물체극의 결합은 전혀 새로운 시도라 많은 실험을 해야 했어요. 여름 내내 냉방도 안 되는 연습실에서 비지땀을 흘렸는데, 어떤 평론가들은 ‘감히 셰익스피어를 마음대로 재창작하냐’며 무조건 평가절하했으니 힘겨웠죠.”

하지만 98년 초연 이후 「레이디 맥베스」는 호평과 함께 적잖은 지원군을 얻었고, 99년 서울연극제에 참가했을 때는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한태숙은 자신의 작품이 모두에게 환영 받을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제 작품이 가장 밑바닥에 있는 인간 본연의 심성을 파헤치기 때문에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죠. 긴장감이 너무 팽팽해서 보고 나면 체할 것 같다는 분도 있어요. 하지만 그게 바로 제 의도인 걸요. 그런 얘기를 들으면 저 혼자 낄낄댑니다.”

그렇지만 연극은 관객이 있어야만 비로소 완성되는 법. 그는 관객을 끌어당길 준비도 돼 있다고 자신했다.

“재미난 실험이 많아요. 예전에 작품을 봤던 관객들도, 처음 보는 관객들도 신선한 감흥을 느끼게 될 거라고 믿습니다.”

(출처 : 예술의전당 월간정보지 2008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