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파르지팔」 연출가 카타리나 바그너
“예술가에게는 확신이 필요하다”


카타리나 바그너라는 이름은 현재 독일 음악계에서 분쟁의 정점에 서 있다. 그녀는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의 직계 증손녀이자, 전후 ‘바그너 페스티벌’을 부활시켜 신바이로이트 시대를 개척한 볼프강 바그너의 막내딸이다. 바그너 가문 중 포스트 볼프강 세대로서 바이로이트 총감독직 계승권을 가진 후손은 모두 열두 명. 그중에서도 볼프강이 쉰이 넘어 낳은 카타리나는 서열상 제일 끝에 서 있었다. 그런 카타리나가 분쟁의 씨앗이 된 이유는 바이로이트의 공식 계승자로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작고한) 형 빌란트의 자식들은 물론 전처 엘렌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딸마저도 권력에서 철저히 배제시킨 볼프강은 2002년, 두 번째 아내 구트룬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막내딸에게 바이로이트를 물려주겠노라고 공식 천명했다.

후계자로 거론되던 다른 후손들의 반발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엑상 프로방스 페스티벌’ 예술감독까지 역임했던 볼프강의 장녀 에바와 뮌헨에서 드라마트루기로 활동중인 빌란트의 딸 니케의 반격은 꽤 위력적이었다. 자신의 입지를 다진 언니와 사촌에 비해 어린 카타리나의 배경은 반면 상대적으로 왜소했다. 1978년 태어나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연극학을 전공한 카타리나는 아버지 볼프강과 하리 쿠퍼 옆에서 조연출로 활동하며 도제교육을 받았다. 2002년 후계자로 지명될 당시에는 이제 막 자신의 이름을 내건 데뷔 작을 선보이기 직전의, 스물네 살짜리 소녀에 불과했다. 12명의 차세대 바그너 중에서도 가장 곱게 자란, 온실 속의 화초나 다름없는 그녀의 모습은 멀리서 보고 듣기에 그저 ‘부모 잘 만난 덕에 만사가 잘 풀린 케이스’로 생각하기 십상이었다.

그런 그녀가 지난 4월 11일 처음으로 한국 기자들 앞에 모습을 내비쳤다. 내년 예술의전당 무대에 오를 「파르지팔」을 소개하기 위해 내한한 그녀의 모습은 선입견을 일시에 불식시켰다. 기자간담회에서 보여준 노련함과 정치성은 태어나면서부터 후계자로 철저하게 훈육받은 예술가의 적통, 그 자체를 증명하고 있었다. 까다로운 질문들은 선문답으로 회피하다가도, “바이로이트가 나치에게 이용당한 것은 사실이며 그것이 역사이다. 역사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당당하게 답하는 모습에서는 주관을 자신 있게 피력하는 신세대의 면모가 엿보였다. 어쨌거나 팬클럽을 끌고 다니던 천진난만한 금발의 미녀는 불과 5년 사이 주목받는 신인 연출가이자 어지간한 남자들마저도 위축시킬 만큼 진지한 ‘거물’로 성장해 있었다.

2008년 예술의전당 무대에 오를 「파르지팔」은 예술의전당 개관 20주년을 앞두고 추진하는 것으로 볼프강 바그너가 바이로이트에서 연출한 1989년 프로덕션이다. 카타리나는 연로한 아버지를 대신해 내년 이 작품의 리바이벌 연출을 담당할 예정이다.


리바이벌 될 「파르지팔」의 특징은?
“아버지의 프로덕션은 여러 문화의 요소들을 차용하고 있다. 무대는 미로 형태로 되어 있는데 이는 구원을 찾아가는 과정을 상징한 것이다. 성배의 세계는 견고한 사원의 모습으로 문제적인 주제를 부각시키며 이와 반대로 숲은 크리스탈로 연출하여 삶의 과정을 통한 구원의 형태를 상징한다. 특히 원작에서는 죽음을 맞이하는 쿤드리가 그대로 생존하여 새롭게 모인 성배 수호자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으로 결말을 맺는 것이 이 연출의 이채로운 점이다. 하지만 보는 사람에게 제각기 여러 가지 생각과 상상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열린 작품이기도 하다.”

증조 할아버지(리하르트 바그너)의 후손으로서 특별히 주목받고 있는데?
“증조 할아버지는 나로서도 자서전을 통해서나 접할 수 있는 분이다. 남겨진 초상화를 보면 외모는 그리 닮지 않았는데, 여성으로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웃음). 그러나 음악적으로는 틀림없이 물려받은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다. 바그너라는 이름은 자랑스럽지만 그러한 나의 배경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부담도 동시에 느낀다. 나 자신의 연출력으로 평가받고 싶다.”

바그너 작품이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고 주목받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여기는가?
“그 생명력은 특수성이 아닌 보편성에 있다. 바그너의 작품들은 시공간을 초월한 무엇을 담고 있다. 그것은 구원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이다. 그처럼 인류에 대한 보편적인 측면이 있어서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 사는 누구에게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파르지팔」에는 한국인 성악가들이 대거 캐스팅되어 있다. 연광철을 비롯한 한국 성악가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적은 상관없다. 작품에 얼마나 열의를 가지고 있는지가 문제이다. 연광철은 바이로이트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보아온 아티스트이다. 자신이 맡은 역할을 넘어서 전 작품을 아우르는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이다.”

처음 오페라를 본 것이 언제였는가?
“연습과 리허설은 세 살 때부터 보아왔다. 정식으로 무대에 오른 오페라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본 것은 다섯 살 때였다.”

연출가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동기가 있는가?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그저 당연하게 그래야 된다고 생각했다.”

자신에게 가장 영향을 끼친 연출가는 역시 아버지인가?
“아버지와, 그리고 스승이었던 하리 쿠퍼가 있다. 하지만 스타일상으로는 노이엔펠츠의 작품에 가장 크게 공감하며 영향을 받았다. 아직도 그의 양식을 추구하고 있으며, 그에게서 배우는 바가 많다. 그가 인물들의 성격을 끌어내는 방식이라든가 비판적, 해석적인 측면을 매우 좋아한다.”

내년 「파르지팔」에 자신의 해석을 추가할 생각이 있는지?
“새롭거나 추가할 해석은 없다. 아버지의 연출에 충실할 것이다. 아버지가 나를 보내는 이유 또한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신뢰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바그너 작품에 부족한 면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작품에 대한 신선한 시각이 필요하다. 사랑, 증오, 구원과 같은 커다란 주제 이외에도 바그너의 작품에는 얘깃거리가 무궁무진하다.”

본인이 연출할 때 중요하게 여기는 점은 무엇인가?
“어느 곳에서 어느 상황에서 작품을 올리는 지를 염두에 둔다. 가령 2004년 부다페스트에서 「로엔그린」을 연출할 때는 마침 헝가리가 EU에 가입한 직후였다. 나는 로엔그린을 민주주의를 대변하는 새로운 인물로 상징하였고, 그가 떠나는 것을 민주주의의 부패를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를 나타냈다는 측면에서 당시 좋은 평가를 얻었다.”

이번에 바이로이트에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로 데뷔한다. 하필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아버지가 제안했다. 내가 가장 잘 연출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이스터징어」로 이번에는 무엇을 보여줄 생각인가?
“예술에 관한 문제 제기를 시도하고 싶다. 또한 작품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볼 것이다.”

좋은 연출가란 어떤 연출가라고 생각하는가?
“작품에 대해 견고한 확신을 가져야 좋은 작품을 완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듯이, 확신이 없이 생각만 많으면 기형적인 결과물밖에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출처 : 예술의전당 월간정보지 2007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