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최초, 세계 최고 권위의 쇼팽국제콩쿠르 심사위원
「2007 예술의전당 음악캠프」의 피아니스트 강충모


“콩쿠르는 개인의 싸움이기도 하지만 사실 국가 대 국가의 싸움이다. 좀 더 좋은 결과가 나왔다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다. 다음을 위해 지금부터 적극 후원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2005년 10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세계 최고 권위의 피아노 콩쿠르인 쇼팽국제콩쿠르에 심사위원으로 참가했던 강충모(47)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콩쿠르가 끝난 후 남긴 말이다. 당시 임동민, 임동혁 형제와 손열음까지 무려 3명의 한국인연주자들이 결선에 진출했지만, 이들에 대한 지원과 관심은 미미했다. 특히 정부와 기업의 적극적인 후원을 등에 업은 일본인연주자들에 비해, 한국인연주자들은 홀로 외로운 싸움을 해야 했다.

1월 31일(수)부터 2월 9일(금)까지 경주 현대호텔에서 열리는 「예술의전당 음악캠프」는 바로 이런 고민과 반성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중국의 윤디 리, 한국의 임동혁을 가르친 하노버 음대교수 아리 바르디(이스라엘), 2005년 쇼팽콩쿠르 부위원장인 피오트르 팔레치니(폴란드), 더블린콩쿠르 공동 설립자이자 심사위원장인 존 오코너(아일랜드), 지난해 김선욱이 우승한 리즈콩쿠르의 심사위원 자크 루비에(프랑스), 2002년 차이코프스키콩쿠르 심사위원장인 블라디미르 크라이네프(러시아), 그리고 한국의 대표 피아니스트이자 교육자인 강충모교수. 세계피아노음악계를 좌지우지하는 스승들이 한 자리에 모여 한국의 피아노 영재 20명을 집중 지도한다. 지난해 하마마츠콩쿠르 3위 김태형(22), 더블린콩쿠르 2위 김규연(22) 등 19~27세의 촉망받는 신예 피아니스트들이 이들의 손에 의해 다듬어진다.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거장들과의 만남은 국제무대진입의 장벽을 조금은 낮춰줄 수 있을 것이다.

세계피아노계의 거물들을 한꺼번에 한국으로 ‘모셔’올 수 있었던 데는 강충모교수의 공이 컸다. 내한하는 5명의 대가 중 자크 루비에를 제외한 4명이 강충모교수가 참가한 2005년 쇼팽콩쿠르 심사위원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2년 전부터 차근차근 준비된 것. 쇼팽콩쿠르 기간 동안 강충모교수는 심사 외에 이들을 섭외하는 중책을 맡았다.

“쇼팽콩쿠르에 가기 전 예술의전당 김용배사장님으로부터 부탁을 받았습니다. ‘한국의 유망주들이 해외 유학을 가지 않고도 세계 최고의 스승들에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다. 바르샤바에 가면 영향력이 있고 음악적으로 해박한 피아니스트 5명을 모셔오라’고 하시더군요.”

“특사로 가신 셈인가요?”라는 질문에 “그렇죠”라며 웃음을 터뜨린 강충모교수는 “심사도 중요했지만 또 하나의 큰 사명을 띄고 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심 끝에 ‘강충모리스트’가 나왔다. “단순히 유명세가 기준이 아니었어요. 여러 사람과 융화될 수 있으면서 자신만의 특별한 전문분야를 가진 분들을 모셔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워낙 명망있는 분들이라 스케줄이 여의치 않을 경우에 대비해 예비명단까지 만들었죠.”

뜻밖에도 대가들이 차례로 제안을 수락했다. 존 오코너는 접촉할 길이 없던 자크 루비에와의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기도 했다. “이분들을 초청하는 데 엄청난 비용이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할텐데 그렇지 않았어요. 이분들이 상업적인 시각을 갖고 계셨다면 지금과 같은 평판을 얻지 못했을 겁니다. 모두 한국 피아노 음악의 성장세에 관심이 많았고, ‘한국피아니스트들의 재능이 궁금하다’며 이 프로젝트에 대해 흥미를 보였습니다. 김용배사장님이 적절한 시기를 선택했고, 행운도 따랐던 거죠.”

이 가운데 아리 바르디와 자크 루비에는 한국 방문이 처음. 루비에는 일본에는 무려 48번을 갔는데 한국에는 가본 적이 없다면서 이번 캠프에 큰 기대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캠프가 한국에서는 처음이지만, 일본에서는 자주 열리고 있다. 「예술의전당 음악캠프」는 하마마츠콩쿠르로 유명한 하마마츠 아카데미의 방식을 모델로 하되, 레슨 시간과 경쟁 방식에는 변화를 줬다. 6명의 교수가 8일간 5명의 학생을 한 시간씩 지도한다. 한 학생이 한 교수에게 2번씩, 총 12번의 레슨을 받게 되는 것이다. 하마마츠 아카데미의 경우 한 학생이 한 교수에게 받는 레슨은 1회. “물론, 한 번만 봐도 학생들에 대해 다 파악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발전 과정을 볼 수가 없죠. 가르침을 받은 후의 반응과 변화를 보려면 두 번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하나의 차이는 참가자의 순위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 학생들의 스트레스를 줄여주기 위해서다. 대신 마지막날 교수들이 3명씩의 학생을 추천토록 해 가장 이름이 많이 나온 3~5명이 연주를 한다. “등수를 매기는 게 아니기 때문에 연주력은 부족하지만 흡수력이 뛰어난 학생이 추천을 받을 수도 있고, 특별히 하나의 레퍼토리를 잘 소화하는 학생이 선정될 수도 있겠죠. 스트레스를 덜 주면서도 동기 부여를 하기 위해서 이런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아마 보이지 않는 경쟁이 치열할 겁니다.”

강충모교수는 그간 수 차례 국제콩쿠르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유망주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의 필요성을 절감해왔다. 특히 쇼팽콩쿠르때는 창피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일본은 아예 대놓고 로비를 합니다. 대사관에서 심사위원들을 초청해 자리를 만들고, 야마하나 가와이와 같은 기업은 무상으로 연습실을 제공해줍니다. 또 관광상품이 있을 정도로 많은 일본인들이 콩쿠르 현장을 찾아오죠. 하지만 한국대사관에서는 연락조차 없더군요. 안타까운 마음에 제가 대사관에 전화를 걸어 아이들에게 한국음식을 좀 먹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강충모교수는 “이 캠프가 장기적인 프로젝트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피아노로 시작하지만 바이올린, 첼로 등 다른 기악 부분으로도 확대가 됐으면 좋겠다”며 큰 기대를 표시했다.

요즘 강충모교수는 안식년을 보내고 있다. 1999년부터 무려 5년 동안 이어진 「바흐 전곡 연주회」 이후 계속 휴식의 시간을 갖고 싶었지만, 스케줄이 허락하지 않아 지난해 9월에야 여유를 찾게 된 것. 그는 “「바흐 전곡 연주회」를 시작할 때는 그렇게 고통스러울 줄 몰랐다. 앞으로 뭘 해도 그때처럼 힘들진 않을 것”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도 “다시 새로운 계획을 구상 중”이라고 말했다. 고통을 통해 힘을 얻은 것일까. 사실 강 교수는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누구보다 고생을 많이 했다. 남들보다 늦은 나이인 초등학교 2학년에 피아노를 시작했고, 손이 작아 엄지와 검지 사이를 칼로 찢기도 했다. 피아노를 포기한 적도 있었고, 유학시절에는 샌드위치가게에서 일하며 학비를 벌었다. 인터뷰 도중 강충모교수는 잊고싶지만 절대 잊을 수 없는 유학시절의 기억 한 자락을 꺼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음악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후 피바디음대 최고연주자과정에 지원했는데 일하던 샌드위치가게에서 두 달치 월급을 가불해도 2,500달러가 부족했어요.” 학비가 면제인 최고연주자과정은 워낙 경쟁률이 치열해 전문 연주자 과정에 입학할 것에 대비한 첫 학기 학비와 볼티모어까지 가기 위한 여비가 필요했던 것. 마침 1등 상금이 2,500달러인 퍼시픽국제콩쿠르가 열린 것은 그에게 마지막 희망이었다. 새벽 4시부터 오후 4시까지 샌드위치가게에서 일을 하고, 기름냄새가 잔뜩 밴 채로 연습실로 달려가 문이 닫힐 때까지 연습에 매달렸다. 그러다 콩쿠르 3주 전, 그릴 청소 도중 오른손 셋째와 넷째 손가락을 크게 베었다. “병원에 갈 돈이 없어 겨우 얻은 약으로 지혈을 하고 붕대로 손가락을 칭칭 감았어요. 붕대를 감은 손으로 연습을 하려니 제대로 될 리가 없었죠. 눈물이 펑펑 쏟아지더군요.”

하지만 결국 그는 1등을 거머쥐었고, 최고연주자 과정에도 합격했다. 그는 이런 경험이 예술가에게 큰 힘이라고 했다.
“그냥 ‘참 아름답구나’하는 생각으로 치는 소리와 그 자체를 감사하면서 치는 소리는 다릅니다. 그러려면 많은 경험이 있어야 하는데 요즘 학생들에게 일부러 고생을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래서 저는 학생들이 영화나 연극, 전시회 등 다양한 예술을 접하도록 합니다. 영화를 보더라도 대사가 아닌 감독의 의도를 파악하라고 강조하죠.”

강충모교수는 피아니스트가 아니라 예술가를 키우고 싶어한다. 뛰어난 테크닉은 좋은 피아니스트 밖에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청중들이 음악을 사랑할 수 있도록 만드는 사람이 음악가이고, 나아가 피아노를 도구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예술가죠. 그러기 위해서는 온갖 경험과 깨달음, 성찰이 필요합니다. 현대는 소리에 대한 감사함과 신비함이 사라진 시대죠. 갈구하는 것에 대한 간절함이 없어요. 음악을 듣고 ‘무엇이 느껴지냐’고 물었을 때 ‘무엇을 느껴야 하냐’고 되묻는 학생들을 보면 답답합니다.”

강충모교수의 부인은 잘 알려진대로 피아니스트인 이혜전 숙명여대교수다. 초등학교 5학년인 딸 나연이도 자연스럽게 피아노를 친다. 강충모교수가 “재주는 있는 것 같다”고 하는 걸로 보아 가능성이 상당한 모양이다. 가장 유명한 피아니스트 부부지만, 이들은 딸을 다른 선생님에게 보낸다. “엄마, 아빠가 가르치면 싸움이 날 것 같아서요. 가능하면 모른 척 하려고 하는데 연습하는 소리가 들리면 자꾸 참견하게 되네요. 하하하.” 멋쩍게 웃는 강충모교수의 표정에서 딸에 대한 애정이 듬뿍 배어나왔다.

인터뷰를 마치고 강충모교수가 악수를 건넸다. 작지만 힘있는 손이었다. 문득 그의 꿈이 궁금했다.
“한국이 세계 음악의 중심지가 됐으면 좋겠어요. 공연에서 뿐 아니라, 교육에서도 그랬으면 해요. 외국학생들이 한국으로 유학을 오길 바래요. 아직은 시작 단계지만, 젊은연주자들의 재능과 한국인들의 뜨거운 열정을 볼 때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출처 : 예술의전당 월간정보지 2007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