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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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매거진
2019년 03월호

2019년 03월호_VOL.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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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기사]

- 변혁기 우리 예술의 횡단면
- 3.1운동의 정신을 소개하는 무대들
- < M.Chat 고양이 > 展 - M.Chat 고양이가 전하는 즐거운 상상력
- 연극 < 오이디푸스> - 인간 그리고 배우에 방점을 찍은 무대
- 예술의전당 아카데미 - 나예전 씨의 아카데믹한 하루
  • 변혁기 우리 예술의 횡단면

    변혁기 우리 예술의 횡단면

    매거진

    이세득의 <오세창 초상>, 캔버스에 유채, 60 x 45.6 cm, 예술의전당 소장 변혁기 우리 예술의 횡단면 적어도 한국에서 서書를 모르면 현대미술을 말할 수 없고, 미술을 모르고 제대로 된 서예도 말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특히 21세기 한국미술의 정체성 문제를 놓고 볼 때 동아시아 미술의 유전인자, 즉 DNA와 같은 필묵筆墨 전통을 빼고는 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3.1 독립 운동 100년이 되는 오늘에도 서書, 화畵, 미술美術의 분파는 더 극심해지고 있고, 이 점에 대해 우리는 오히려 너무나 당연시하고 있다. 글 이동국 예술의전당 서예부   당연한 사실을 회의하다   2019년 오늘날 우리의 예술은 제각각 나뉘어 있다. 서예는 서예대로, 한국화는 한국화대로, 미술은 미술대로 서로 상종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것이 무엇이 문제인가?’ 하고 반문한다. 하지만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지금 ‘의심’하는 것은 오늘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우리 예술의 모습이 정상적이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융·복합 예술을 표방하며 서로 다른 장르들이 뒤섞여 놀자고 30년 전에 개관한 예술의전당도 서예·미술·디자인은말할 것도 없고 음악·오페라 등 장르마다 여전히 각자도생各自圖生이다. 흔하다면 흔한 융·복합의 축제프로그램도 보기 힘들다. 우리 예술이 본래부터 그랬던 것일까. 묵객墨客과 가객歌客이 한마당에서 놀던 시절은 정말 전설 속의 이야기인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서의 몰락과 서, 화, 미술의 분리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은 일본에 강제 병합된다. 이후 1919년 3월 1일 대한독립만세운동이 국내외에서 들판의 불길처럼 번졌다. 같은 해 4월 11일 상하이에서 임시정부가 수립되고, 중국의 5.4운동은 물론 인도와 베트남 등지에서도 독립운동이 벌어졌다. 그래서 무단통치를 문화통치로 바꾼 일제는 1922년부터 <조선미술전람회>를 만들어 1·2부에 서양화·동양화, 3부에 서예·사군자를 소개하는 전시를 10회까지 열었다. 하지만 이후 23회로 마감하는 1944년까지 서예·사군자는 제외됐다. 그때부터 조선예술의 장자방張子房 역할을 하던 서예는 근 100년간 주류예술에서 낙오자가 돼 오직 공모전과 서숙書塾, 글방을 통해 연명해 오다시피 했다. 물론 그 배경에는 19세기 말 일본에서 고야마 쇼타로와 구로다 세이키 같은 서양화가들이 ‘서는 미술이 아니다. 그래서 예술도 아니다’라는 서구의 잣대를 받아들인 데 있다. 미술과 한몸이자 그 근원을 같이하던 서화를 난도질한 것이 식민지 조선에 그대로 적용된 것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100여 년 동안 서예와 동양화는 사실상 남남의 길을 걸어왔다. 이런 마당에 지금 다 같은 조형미술로 분류되면서도 미술과 서화를 현실적으로 한몸으로 간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초월을 잉태한 전통으로서의 서화와 현대로서의 서구미술, 또 내재적인 것으로서의 서화와 외래적인 것으로서의 서구미술의 수용과 재해석을 이야기한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마당에 지금까지 남남으로 살아왔듯이 앞으로도 따로따로 살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을 돌려 근원에서부터 살펴보면 그 폐해는 서예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서화와 우리 현대미술의 정체성 문제까지 연쇄적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이인성의 <선면화>, 종이에 채색, 12 x 45 cm, 개인소장 유창환의 <오언절구>, 종이에 먹, 132.4 x 30.3 cm, 개인소장 배운성의 <우리마을>(1958), 다색판화, 48 x 20 cm, 밀알미술관 소장   독립에 대한 자문   따라서 이번 <자화상 - 나를 보다> 전시는 이 시점에서 ‘예술에 있어 독립’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를 자문한다. 3.1 독립만세운동 1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우리 예술은 식민 상태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고, 그 이유는 간단명료하다. ‘서는 미술이 아니다. 그래서 예술도 아니다’라고 하는 일본 제국주의, 아니 더 근원적으로 서구미술 잣대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 서예나 서화, 더 나아가서 미술의 현실은 이 잣대에 완전히 절어 있다. 과연 우리 예술은 진정으로 ‘독립이 됐는가’를 필묵이 소리 없는 절규로 우리 스스로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우리 예술에 있어 ‘독립’이라는 문제에 어떤 처방이나 결론을 섣불리 내고자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아직도 우리가 일제강점기를 전후한 우리 예술의 전모나 실상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전시라는 장치를 통해 한자리에서 우리 예술을 유기적인 맥락으로 본 적은 더더욱 없다. 사실상 이 시기 예술의 전모는 지금까지는 볼 필요도 없었고, 본다는 것 자체를 생각도 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일제강점기 당시 얼마나 많은 작가가 일본 유학을 가서 무엇을 배웠고 어떻게 극복해 냈는지에 대해 우리는 애써 묻지 않았다. 이중섭, 김환기, 이응로, 이인성, 김용준 등 20세기 한국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치고 일제강점기 일본 유학을 가지 않은 사람은 사실상 없다. 이 시대에 조선에서 미술교사로 활동한 사람 또한 죄다 일본인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일본으로 유학을 갔을까. 일제강점기라는 특수한 시대라면 그 이유에 대해 반추해 볼 필요가 있다. 일본 사람이 그린 조선의 모습이나 광복 후 남북 분단 정국에서 월북 작가들의 그림도 우리 스스로가 외면하고 금기시해 왔다. 일본의 최고 화가들이 금강산·경주 등 조선의 산천 풍물과 역사 현장을 그린 그림은 부지기수다. 백번 양보해서 일본 작가와 월북 작가의 경우 식민지와 남북 분단이라는 역사의 감정과 이데올로기적인 특수성 때문에 오늘에야 거론할 여건이 됐다고 치더라도 소위 ‘민화’를 이 시대 주류 미술사에서 외면한 이유 또한 잘 납득이 되지 않는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서예를 보면 일제강점기 지사와 열사의 유묵遺墨이야말로 조형과 정신이 일치되는 서예 중의 서예다. 그런데도 이들은 공모전에서 입상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서예가 축에도 들지 못했다. 게다가 이런 인물의 작품을 예술로 취급조차 하지 않았다.   서병오의 <송국화>, 종이에 수묵, 17.5 x 48 cm, 성베네딕도 수도원 소장   <자화상- 나를 보다> 전시의 구조와 구성   그래서 이번 전시는 ‘예술에 있어 독립 문제’를 화두로, 대변혁기 우리 예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조망하고자 한다. 1차적으로 ‘일제강점기’를 중심으로 그 이전의 개화기·대한제국, 그 이후 광복·분단기로 나누었다. 그리고 ‘서’·‘서화’·‘미술’·‘서화미술’이라는 카테고리를 가지고 문인·화원·프로작가, 조선·일본·서양·남북, 제국주의·민족주의·민주주의·사회주의와 같은 작가의 작품들을 지역과 사상 등 다양한 관점에서 유기적으로 배치했다. <자화상- 나를 보다> 전시로 변혁기 우리 예술의 횡단면을 종횡하고자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 변혁기 우리 예술의 실상과 전모를 뒤집어 놓고 종횡하다가 보면 일제강점기를 전후한 한반도라는 대한민국 시공만큼 이렇게 대척점에서 다양한 예술이 싹트고 꽃이 핀 때도 없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 1차적 토대가 서예와 서화다. 전통시대 문인과 근현대 서예가들이 교차하고 있다. 흥선대원군, 김옥균, 안중근, 민영익, 이준, 김구, 이승만, 노백린, 오세창, 한용운 등과 같은 인물이 전자다. 이들 중에서 이육사·곽재기·김진만과 같은 사람은 한 손엔 붓, 또 다른 손엔 폭탄을 든 사람이다. 그리고 <조선미술전람회>라는 관전을 통해 본격 직업작가로 등장하는 인물이 김돈희, 황철, 김태석, 서병오, 유창환, 손재형 등이다. 2차적 토대인 화畵도 마찬가지인데, 장승업·안중식·이도영·조석진·박은배·채용신 등의 화원 화가는 물론 익명의 민화 작가가 등장해 기존 조형언어를 뒤집고 있다. 3차 토대로서 동양화가와 서양화가 또한 마찬가지인데, 김은호·이상범·변관식·허백련·오일영·이응로 등이 전통을 어떻게 현대로 녹여낼 것인가를 고민하고 실천해 낸 작가라면 나혜석·김관호·구본웅·이인성·이중섭·김환기 등은 외래적인 것에 방점을 두고 내재적인 것과 하나가 될 것인가를 고민하고 실천해 낸 작가로 볼 수 있다. 이 지점에서는 일본 작가들이 대거 조선의 강산과 풍물 역사를 그려내고 있다는 점과 월북 작가와 월남 작가의 행보도 주목된다. 김용준·정종녀·이쾌대·이팔찬이 사회주의를 찾아 올라갔다면, 이중섭·정규·박고석 등과 같은 작가는 자유주의를 찾아 내려왔기 때문이다.   죽는 예술과 살아나는 예술   지금까지 본 대로 따지고 보면 실로 일제강점기를 전후한 이 시기만큼 작가나 작품이 사상적으로 조형적으로 미학적으로 다층적이고 다양하게 꽃이 핀 때도 없다. 차라리 새로운 미의 질서를 찾아가는 카오스, 즉 혼돈 상태라면 모르겠지만 나라가 망했으니 예술도 망했고, 민족문화가 단절됐다고 한다면 너무 표피적인 속단이 아닌가 하고 자문하게 된다. 당연히 전쟁 망국이라는 극한의 환경을 따라 죽는 예술이 없을 수가 없다. 하지만 이와 동반해 나라가 일본 제국주의에 강제로 지배당했기 때문에 정신적으로는, 실제가 그러하듯 더더욱 강건하고 아름답게 처절한 실존을 조형언어로 극복하며 표출했다. 따라서 이번 전시에서는 3.1 독립운동 100주년을 맞아 친일과 항일이라는 프레임 이전에 이 땅에서 꽃이 지고 거름이 되고, 그래서 다시 싹이 트고 꽃이 핀 예술의 여러 모습부터 ‘있는 그대로’ 살펴보고자 한다. 그래서 식민지 조선에서 피어난 조형언어를 한자리에서 바라보고 각자가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가를 들어보고자 한다. 실제로 한국 현대미술에 있어 전통과 현대가 단절됐는지, 대체 전통의 실체가 무엇인지, 우리 그림에서 일본의 영향을 ‘왜색’이라 거부했지만 실제가 그런지, 그렇다면 예술에 있어 창조 이전의 모방 문제는 어떻게 해명될 수 있는지, 서예와 한국화, 더 나아가 현대미술도 지천으로 창작되고 있지만 이것이 우리 역사가 기대하고 있는 진정한 모습인지…. 전시장을 찾은 관객들이 이러한 여러 가지 자문을 하고 또 그 자답을 찾아내길 바란다. 

  • 3.1운동의 정신을 소개하는 무대들

    3.1운동의 정신을 소개하는 무대들

    매거진

    뮤지컬 <영웅> 3.1운동의 정신을 소개하는 무대들   3.1운동은 거대한 퍼포먼스였다.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이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탑골공원에서 학생과 시민들이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비록 일제의 냉혹한 진압으로 실패했으나 전국을 넘어 해외로 퍼진 만세운동의 물결은 우리 민족에게 애국·항일 정신을 드높였다. 글 이재훈 뉴시스 문화부 기자 사진 국립합창단, 서울예술단, 에이콤   공연예술도 마찬가지다. 특정한 퍼포먼스로 관객의 정신을 고양시킨다.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펼쳐지는 공연들은 이러한 정신의 엔진을 마음껏 장착한다. 공연예술의 중심지인 예술의전당에서는 합창, 뮤지컬, 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으로 100년 전 그날의 기운과 독립·애국·승화 정신을 더욱 뜨겁게 전할 예정이다.   세계와 공유하는 우리 민족의 흥과 신명   국립합창단이 3월 3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펼치는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창작칸타타 <동방의 빛>은 3.1운동이 뼈아픈 역사만은 아니었다는 이야기로부터 CENTER출발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매년 빌린 극장이나 교회당을 태극기와 만국기로 꾸미고 군악대를 초청해 독립군가와 애국가를 부르며 3.1절을 경축했다. 식이 끝나면 농악대를 앞세우고 퍼레이드와 함께 연희·공연·폭죽놀이까지 벌였다고 한다. 창작칸타타 <동방의 빛>은 우리 민족의 탄생을 표현한 1부 건建, 한국인의 정신을 표현한 2부 혼魂, 자주독립을 축하하고 대한민국의 미래와 희망을 노래하는 3부 판으로 구성된다. 1부에서는 우리 민족의 역사인 단군세기를 한국적이고 현대적인 색채로 풀어냈고 2부에서는 우리 민족의 정신을 흥興, 한恨, 기氣, 정情, 비悲 다섯 가지로 소개한다. 3부의 주제 ‘판’은 순수 우리말로 ‘구경꾼들이 보는 가운데 여러 가지 놀이가 벌어지는 마당’을 가리키며, 우리 민족의 흥겨운 노래들을 통해 3.1절이 축제의 날임을 노래한다. 시작곡 ‘함성’에서는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는 합창이 이어져 청중에게 감동을 전할 것이다. 아픈 기억에서 벗어나 우리 민족의 흥과 신명을세계와 공유하기 위한 구성이다. 창작칸타타 <동방의 빛>은 작가 탁계석이 대본을, 작곡가 오병희가 곡을 썼다. 서양 관현악을 기본으로 하되 국악기와 소리꾼의 목소리 등 우리 민요의 선율을 모티브로 한국적인 색채를 더했다. 여기에 내레이션과 어린이 합창이 더해진다. 윤의중 국립합창단 예술감독이 지휘봉을 들고 시흥시립합창단, 안양시립소년소녀합창단, 코리아쿱오케스트라가 협연한다.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   뮤지컬로 만나는 윤동주와 안중근   윤동주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사촌 송몽규를 본 뒤 반가움, 안도감, 그리움, 두려움 등 온갖 감정이 뒤섞인 목소리로 오열하는 장면. 객석 곳곳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윤동주는 마치 달이 차오르듯 감정의 부피를 키우더니 이 장면에서 모든 것을 내지르듯 폭발시켰다. 서울예술단이 3월 5~17일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선보이는 <윤동주, 달을 쏘다.>는 비극의 역사에 맞서 고뇌하던 시인 윤동주와 뜨거웠던 청년들의 이야기다.  윤동주는 일제강점기에 유려한 시어를 사용해 인생과 조국의 아픔에 고뇌하는 심오한 시편들을 남긴 ‘서시’의 시인이다. 이런 윤동주를 내세운 <윤동주, 달을 쏘다.>는 서울예술단의 대표 레퍼토리다. 2012년 초연부터 2013년과 2016년 공연까지 관객과 평단 모두로부터 호평을 받았고, 지난 2017년 공연은 객석점유율 100%를 찍었다. 대사로 절묘하게 옮긴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 독백을 비롯해 윤동주가 형무소에서 의문의 주사를 맞고 쓰러져 친구들의 모습을 보는 환상 장면을 거쳐 마지막 넘버 ‘달을 쏘다’를 부르는 부분까지 15분 가량 힘겨운 감정 신을 이어가니, 관객들이 당해 낼 재간이 없다. 이번 다섯 번째 시즌의 윤동주는 초연부터 4번의 공연 모두 이 역을 맡아 ‘윤동주 장인’으로 불리는 배우 박영수가 다시 한번 연기한다. 서울예술단 신예 신상언도 윤동주를 연기한다. 윤동주와 청춘을 함께한 친구들 송몽규 역과 강처중 역에는 박영수와 함께 서울예술단의 ‘슈또풍’ 삼총사로 불리는 김도빈·조풍래가 각각 캐스팅됐다. 올해 10주년을 맞은 대표 창작 뮤지컬 <영웅>은 7월 28일부터 8월 21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른다. <영웅>은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뮤지컬이다.  안 의사의 마지막 1년을 조명해 조국에 헌신한 애국지사의 면모와 운명 앞에서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렸으며, 2009년 10월 26일 초연 이래 작품성과 흥행성을 검증받았다. 특히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뒤 감옥에 갇혀서도 동양평화를 고민한 안중근의 모습은 울림을 안긴다. ‘그날을 기약하며’, ‘오늘의 이 함성이’ 등 국산 창작 뮤지컬 중 손에 꼽히는 넘버는 감동을 더 한다. 특히 <영웅>의 하이라이트인 ‘누가 죄인인가’가 빛을 발한다.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것에 대해서 인간적으로 사과하면서도 그를 살해할 수밖에 없던 15가지 이유를 조목조목 열거하는 장면에서,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안중근 의사의 진심은 관객들을 무대 위뿐만 아니라 생생한 역사의 현장으로 초대한다.   오페라로 생각해 보는 3.1운동의 정신   국립오페라단은 두 편의 오페라로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린다. 우선 로시니의 <윌리엄 텔>이 5월 10일부터 12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국내 초연한다. 이탈리아 벨칸토 오페라의 선구자인 로시니의 <윌리엄 텔>은 13세기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는 스위스에서 일어난 사건이 바탕이다. 독일 극작가 겸 시인 실러의 「빌헬름 텔」이 원작으로, 최악의 상황에서도 신뢰가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음을 보여준 ‘윌리엄 텔의 사과’ 등 오스트리아의 압제에 대항하는 스위스 민중의 저항이 인상적이다. 일제강점기 독립을 위해 저항하던 3.1운동의 정신을 떠올리게 하는 이 작품은 관객들의 심장을 절로 두근거리게 만든다. 1829년 파리오페라극장에서 초연한 지 190년 만에 국내 무대에 오르는 <윌리엄 텔>은 내용도 인상적이지만 유려한 선율과 고난도 기교가 필요한 벨칸토 오페라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음악이 주는 감동 역시 크다. 무엇보다 강요셉이 주역인 아놀드를 맡아 눈길을 끈다. 이 역은 테너가 낼 수 있는 가장 높은 음인 하이 C가 20번이상 나오는 등 난도가 높으며, 이를 소화해 낼 수 있는 테너의 캐스팅이 어려워 자주 공연하기 힘든 작품 중 하나다. 강요셉은 아놀드 역으로 2016년 오스트리아 음악극장시상식에서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으로 남우주연상을 차지하는 등 오페라의 본고장 유럽에서도 아놀드 역 섭외 0순위로 통한다. 아울러 이번 공연은 합창단, 오케스트라, 무용단 등 출연진만 250여 명에 달하는 대작이다. 지난 2018년 국립오페라단 <마농>으로 호평을 들은 세바스티안 랑 레싱이 지휘하고, 잘츠부르크페스티벌에서 카라얀의 <발퀴레>를 재연출한 베라 네미로바가 연출을 맡는다.   국립합창단 기획 제99주년 3.1절 기념공연 <한국의 혼>   이어 국립오페라단은 9월 27~28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창작오페라 <1945>를 선보일 예정이다. 2017년 국립극단이 선보인 배삼식 원작의 연극을 오페라로 재탄생시켰다. 연극·뮤지컬·창극을 오가는 스타 연출가 고선웅이 연출을 맡고, 작곡가 최우정이 곡을 만든다. 지휘에는 정치용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예술감독이 나선다. 연극의 배경은 1945년 광복 직후의 만주다. 이곳에 살다 전재민戰災民 구제소에 머물며 기차를 타고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는 조선 사람들은 광복으로 이른바 다시 ‘영점지대’가 된 그 시대의 혼란을 그대로 머금고 있다. 일제강점기는 그 누구도 원죄에서 피해 갈 수 없게 만들었다. 위안소를 탈출한 ‘명숙’ 그리고 그녀와 함께 죽을 고비를 넘긴 ‘미즈코’뿐만 아니라 명숙과 미즈코를 위안소에서 괴롭힌 포주이지만 서글서글한 ‘장수봉’과 착하게 새 삶을 꿈꾸는 ‘선녀’, 생각 속에서는 실행력이 넘치는 지식을 지녔지만 중요한 일 앞에서는 우유부단한 ‘구원창’ 등 극중 인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올가미에 걸려 있고 선함과 악함을 시시때때로 오간다. 결국 관객은 이런 양면적인 캐릭터 앞에서 섣부른 가치 판단을 하기 전에 망설이거나 머뭇거리게 된다. 이처럼 관객이 한번 더 생각하게 한다는 점은 작품 자체와 그 시대, 나아가 광복 전후와 다를것 없는 ‘지금’에 대해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여기에 음악이 깃든 오페라는 이 이야기에 좀 더 입체감을 더할 것으로 기대된다. 

  • < M.Chat 고양이 > 展 - M.Chat 고양이가 전하는 즐거운 상상력

    < M.Chat 고양이 > 展 - M.Chat 고양이가 전하는 즐거운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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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Chat 고양이가 전하는 즐거운 상상력 < M . C h a t 고 양 이 > 展 3 . 1 6 ( 토 ) -5 . 1 5 ( 수 ) 한 가 람 미 술 관   프랑스의 고양이 아저씨, M.ChatMonsieur Chat, 무슈 샤가 그리는 고양이 그래피티는 그의 엉뚱한 상상 속에서 현재의 모습으로 창작됐다. M.Chat의 본명은 토마 뷔유. 1977년 스위스 부드리에서 태어났 으며 프랑스·스위스 국적을 가진 그는 현재 프랑스 파리를 중심 으로 활동 중인 그래피티 아티스트다. 글 임지수 큐레이터 사진 씨에에이치   프랑스 중부의 도시 오를레앙 예술디자인학교에서 공부하던 토마뷔유는 한 파키스탄 소녀가 웃고 있는 고양이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리는 것을 보고, 여기에 영감을 받아 오를레앙의 한 벽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고양이 그림을 그렸다. 1995년부터 2001년까지 그는 오를레앙에서 여러 번의 반복된 작업을 통해 현재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미소를 머금은 고양이를 탄생시켰다. 수수께끼 같으면서도 인간적인 교감을 불러일으키는 그의 고양이 이미지는 사람들로 하여금 다양한 궁금증을 자아낸다. 왜 이곳에 고양이가 있는지, 왜 하필 노란색인지, 왜 한결같이 익살맞은 표정을 하고 있는지 말이다. 미스터리에 싸인 그의 고양이를 두고 토마 뷔유는 ‘답은 고양이와 고양이를 만난 사람에게 있다’고 말할 뿐이다.     그래피티를 넘어 소통으로   그는 선명하고 단순한 선으로 그림을 구성했으며 더불어 M.Chat 고양이가 그려진 각각의 도시에 대한 사랑을 담아내려고 했다. M.Chat 고양이를 만나는 관람객들에게 서로 간의 대화를 이끌어내고, 그림이 그려진 도시에 얽힌 기억을 상기시키도록 했으며, 문화적인 소통까지 이끌어내고자 했다. M.Chat 고양이로 성공을 거둔 토마 뷔유는 오를레앙을 떠나 이후 파리, 뉴욕, 서울, 홍콩을 포함한 전 세계 수많은 도시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는 중이다. 물론 그의 그래피티 작업이 순탄치는 않았다.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동안 여러 건의 소송에 휘말렸으며, 그중 가장 큰 파리에서의 소송 패소 결과 ‘그래피티 범죄 및 상습적 범행’으로 3개월 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이로 인해 이슈화된 토마 뷔유와 M.Chat 고양이는 언론에서 ‘악명 높은 예술가’로 평가받을 뻔했으나 결과적으로는 대중의 관심과 지지를 받게 되며 상황은 500유로에 상응하는 단발성 벌금형으로 일단락됐다. 토마 뷔유가 처음으로 선보인 작품의 전시 공간은 스트리트, 즉 길거리였지만 작품을 시작한 지 몇 년이 채 안 된 지금은 거리에서 벗어나 작품 활동을 보다 확장된 공간에서 영위하고 있다. 그래피티라는 장르, 영역에서 벗어나 조금 더 관객에게 가깝게 다가가고자 하는 것이다. 특히 2004년 12월 5일 파리 퐁피두센터 광장에 그려진 가로 50m, 세로 25m의 <세계에서 가장 큰 고양이>는 「리베라시옹」지에 실릴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토마 뷔유가 ‘길거리’에서 벗어나 ‘소통하는 아티스트’가 되는 순간이었다.    무한한 긍정과 상상력의 세계   아무것도 모른 척 순수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M.Chat 고양이의 즐겁고 긍정적인 모습을 담은 이번 전시는 숨 가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국의 젊은이들과 꿈과 희망을 품고 자라나는 어린이들, 그리고 본 전시를 관람하는 관람객들뿐만이 아닌 전 세계인들에게 관람하는 매 순간 즐거움과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자 기획됐다. M.Chat 고양이만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긍정효과를 느껴볼 수 있는 이번 전시에서는 토마 뷔유의 초기작부터 다양한 콘셉트와 스타일로 제작된 작품이 공개된다. 전시가 시작되는 3월 중순에는 토마 뷔유가 직접 내한해 작가가 가지고 있는 순수함과 열정, 그리고 작가의 창의적이고 뛰어난 상상력까지 함께 경험해 볼 수 있는 뜻깊은 행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길거리에서 시작된 그의 작품 활동이 거리를 벗어나 보다 확장된 공간에서, 보다 무한한 상상력으로 펼쳐지는 것을 많은 이들이 경험하길 바란다.

  • 연극 <오이디푸스> - 인간 그리고 배우에 방점을 찍은 무대

    연극 <오이디푸스> - 인간 그리고 배우에 방점을 찍은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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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그리고 배우에 방점을 찍은 무대 연극 <오이디푸스> 1 . 2 9 ( 화 ) - 2 . 24 ( 일 ) C J 토 월 극 장 서재형, 한아름의 연극 <오이디푸스>는 인간 오이디푸스, 즉 잔인한 신탁에 조롱당하는 무력한 영웅의 모습보다는 스스로의 선택을 통해 비극을 맞이하고 그 참혹한 결과 역시 스스로 감당하고자 하는 인간의 주체적인 의지에 더욱 주목한 작품이다. 글 김주연 공연 칼럼니스트 사진 샘컴퍼니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오이디푸스   무엇보다 이번 공연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것은 이 작품이 오이디푸스라는 한 인간에 가장 큰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었다. 서재형, 한아름이 소포클레스의 같은 원작을 기반으로 2011년 LG아트센터에서 공연했던 음악극 <더 코러스, 오이디푸스>의 경우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코러스의 기능과 의미에 큰 비중을 둔 작품이었다. 극중 14명의 코러스들은 사건의 증인이 되기도 하고 오이디푸스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등 객관과 주관을 오가며 이야기를 이끌었고, 이들이 공연 내내 부르는 노래들은 그 자체로 극을 진행시키는 중요한 요소이자 음악극으로서 작품의 정체성을 확인시켰다. 하지만 이번 연극은 제목에서부터 ‘코러스’가 아니라 주인공 ‘오이디푸스’를 전면에 내세웠고, 실제 공연에 있어서도 오이디푸스 캐릭터가 거의 모든 극적, 감정적 흐름을 주도해나갔다. 이는 원작이 담고 있는 어마어마한 비극적 파토스를 오롯이 당사자 오이디푸스의 시점으로 풀어내고자 한 극작의 의도와, 황정민이라는 특별한 존재감을 지닌 배우를 통해 원작의 묵직한 무게를 담아내고자 한 연출의 의도 모두가 합쳐진 결과로 볼 수 있을 듯하다. 또한 이 작품은 소포클레스의 원작인 <오이디푸스 왕>이 아니라, 그냥 <오이디푸스>를 제목으로 택하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오이디푸스의 비극을 보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그려내고 있다. 즉, 최고의 위치에서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그리스 비극의 영웅이 아니라 감정과 의지를 지닌 한 인간으로서 오이디푸스가 겪어야했던 비극과 그의 선택에 주목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동침하리라”는 신탁을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먼 길을 떠나지만, 결국 예정된 자신의 운명을 피하지 못한 채 스스로의 무지를 깨닫고 두 눈을 찌른 인물이다. 이번 공연에서도 오이디푸스가 주어진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끔찍한 파국을 맞는다는 전개는 변함없었지만, 잔인한 신탁에 조롱당하는 무력한 모습보다는 스스로의 선택을 통해 비극을 맞이하고 그 참혹한 결과 역시 스스로 감당하고자 하는 인간의 주체적인 의지에 더욱 주목했다.   갈림길에 선 인간의 선택 테베 백성들의 고통스런 탄원으로 시작되는 원작과 달리, 연극 <오이디푸스>는 신탁을 피해 먼 길을 떠나는 오이디푸스의 여정,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으며 자신의 발에게 어디로 가야할 지를 묻는 그의 질문으로부터 시작된다. 또, 원작의 대사를 압축적으로 줄이고 다듬으면서도 작가가 유난히 강조하고 반복하는 단어와 구절이 있었으니, 바로 ‘삼거리’와 ‘그 인생의 갈림길에서’다. 극 중 오이디푸스가 라이오스 왕을 만나 살해한 장소로 언급되는 ‘삼거리’를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입을 통해 여러 번 반복하게 만들 면서 하나의 강렬한 이미지로 각인시킨다. 여기서 삼거리는 단순한 공간적 풍경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서로 얽혀있는 시간 속에 놓여있는 오이디푸스의 실존을 의미하며, 또한 세 개의 시간축이 하나로 만나 만들어내는 인간의 운명을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다.        또, 가장 여러 번 반복되는 구절인 ‘그 인생의 갈림길에서’는 이 작품이 오이디푸스라는 한 인간의 주체적 선택에 가장 큰 방점을 찍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다. 예언자 테레시아스를 만나기 전, 이오카스테는 “불길한 노인네니 만나지 말라”고 하지만, 크레온은 “현명한 자이니 만나보라”고 권한다. 그 갈림길에서 오이디푸스는 만나는 것을 택하고, 이는 또한 그의 운명을 재촉하는 하나의 계기가 된다. 코린토스에서 온 사자의 말을 들은 오이디푸스가 출생의 비밀을 알고 있는 키타이론 산의 양치기를 만나고자 할 때도, 이오카스테는 “더 이상 알려하지 말라”고 애원하지만 이번에도 그는 만나기를 선택한다. 즉 신들이 예고한 운명은 결국 그들의 뜻대로 다 이루어졌지만, 매번 인생의 갈림길에서 자신의 운명을 선택한 것은 오이디푸스, 그 자신의 의지였다는 것을 이 작품은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오이디푸스의 주체적인 의지는 모든 진실이 밝혀지고 난 뒤 한층 처연한 모습으로 드러난다. 모든 진실을 알게 된 뒤 자신의 두 눈을 찔러 벌한 오이디푸스는 잠시 머물면서 앞날을 생각하라는 크레온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홀로 테베를 떠나 먼 길에 오른다. 이는 “라이오스 왕의 살해자는 밝혀지는 즉시 테베로부터 추방하겠다”고 한 자신의 말, 통치자의 말에 대한 책임이자 자기 운명의 무게를 사랑하는 자식(혹은 형제)에게 지우지 않은 채 홀로 감당하고자 하는 인간 오이디푸스의 선택이다. 처참한 운명 속에 무너졌지만,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스스로의 선택과 의지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고 삶을 이어가고자 하는 오이디푸스의 모습은 환한 무대를 내려와 어두운 객석 앞쪽을 천천히 더듬으며 나아가는 배우의 발걸음 속에서 더욱 묵직하고 숙연한 무게로 다가왔다.   비극의 무게를 짊어진 배우들의 존재감   이렇듯 작품 전반에 걸쳐 인간 오이디푸스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인 만큼 배우 황정민이 감당해야 했을 무게와 책임감 역시 엄청났을 것이다. 하지만 확실히 공간 장악력과 순간 몰입력이 뛰어난 황정민은 한 시간 반을 내리 무대 위에 서 있으면서도 한 순간도 흐트러지지 않는 막강한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는 또한 다른 배우들과의 팽팽한 에너지 대결 및 균형감을 통해 이룬 성과이기도 했다. 극 중 대부분의 무게는 황정민의 오이디푸스에 실려 있었지만, 쉴 새 없이 휘몰아치는 극적·감정적 파도 속에서도 공연의 무게중심이 흐트러지지 않은 데는 남명렬·배해선·박은석·최수형·정은혜 등 조연 배우들의 힘이 컸다. 이오카스테 역의 배해선은 섬세하면서도 밀도 있는 감정으로 후반부의 비극성을 증폭시켰고, 예언자 테레시아스로 분한 정은혜는 특유의 깊고 울림 있는 음색을 캐릭터 속에 잘 녹여냈으며, 코린토스의 사자 역으로 등장한 남명렬 역시 명징한 발성과 관록이 느껴지는 존재감으로 작품을 견고하게 받쳐주었다. 코러스 장을 맡은 박은석과 크레온 역의 최수형 또한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무대 공간의 역동감을 잘 살리면서 극에 생동감을 더했다.     연기도 연기지만, 공연 내내 전원 단독 캐스팅으로 모든 무대를 소화해냈다는 것만으로도 모든 배우들에게 큰 박수를 보낼 만하다. 한 달 가까이 되는 긴 기간 동안 매일매일 이 어마어마한 비극의 무게를 감당하고 무대 위에서 매 번 고통스런 진실과 마주해야 했을 배우들에게는 정말 쉽지 않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공연을 위해 또 관객을 위해, 매번 자기 안의 에너지를 온전히 쏟아 부으며 무대를 꽉 채우는 배우들의 모습에서, 다시 한번 스스로의 선택을 온몸으로 끌어안은 인간 오이디푸스의 모습이 겹쳐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예술의전당 아카데미 - 나예전 씨의 아카데믹한 하루

    예술의전당 아카데미 - 나예전 씨의 아카데믹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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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예전 씨의 아카데믹한 하루 나예전 씨 가족의 생활은 예술의전당 아카데미와 함께 돌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족들이 한두 가지씩 강좌를 듣고 그 강좌를 통해 알게 된 공연과 전시들을 함께 보곤 한다. 보고 싶은 공연 전에 강좌를 통해 기본 지식을 배우기도 한다. 그러고 나서 공연을 보면 감동이 훨씬 커진다. 예술은 아는 만큼 보이기 때문이다. 글 손미정 예술의전당 교육사업부장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어느 날, 나예전 씨는 서둘러 설거지를 마치고 외출 준비를 한다. 오늘은 예술의전당 아카데미 특강 강좌가 있는 날이다. 오페라 입문자를 위한 강의로, 이 강좌를 듣고 난 뒤 스스로 유튜브를 찾아보거나 DVD를 구입해 오페라를 감상할 정도가 됐다. 나예전 씨는 매주 목요일 예술의전당으로 수업을 들으러 간다. 일주일 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다. 오늘 나예전 씨가 오페라강좌에서 배울 작품은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다. 대형 강의실에서 엄선된 영상과 함께 감상하는 오페라는 한 주의 피로를 씻어준다. 이 오페라는 한 달 뒤 공연도 예매해 두었기 때문에 미리 배우고 공연을 본다면 많은 도움이 될 터다.     처음 아카데미 강좌를 알게 된 것은 첫째 아이를 어린이미술아카데미에 보내면서부터다. 엄마들 사이에서는 이미 입소문이 났기에 ‘광클’을 해야만 수강신청에 성공할 만큼 인기 강좌다. 미술을 좋아하는 딸이 창의적인 커리큘럼으로 진행되는 어린이미술아카데미를 아주 즐거워해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꼬박 3년을 빼놓지 않고 다녔다. 그 영향인지 딸은 지금 미술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있다. 오늘은 함께 오페라를 공부하는 같은 반 수강생들에게 시아버지의 전시회 초대장을 전달할 예정이다. 나예전 씨의 시아버지는 이미 20년째 서예아카데미를 다니고 계신다. 정년퇴직 후 서예와 함께 사군자도 섭렵해 동호인들과 함께 1년에 한 번씩 여는 그룹전에도 참여하신다. 이번 전시에는 세 작품이나 출품하셨다고 한다. 나예전 씨의 친구들은 평소 예술의전당을 자주 드나들며 늘 문화생활을 하는 나예전 씨를 몹시 부러워한다. 오늘은 그 친구들에게 아카데미의 강좌들을 알려주기 위해 홍보용 책자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인문아카데미, 공연·음악 감상아카데미, 미술실기아카데미, 어린이미술아카데미, 음악영재아카데미, 서예어린이아카데미 등 6개 아카데미에 강좌 수가 거의 150개에 이른다. 아카데미 담당직원에게 물어보니 수강생 수는 무려 4000명 가까이 된다고 한다. 이 정도면 거의 시민예술대학이라고 일컬어도 모자라지 않을 정도다.나예전 씨는 아카데미와 함께하는 생활이 몹시 만족스럽다. 삶이 여유로워지고 가족 간 대화가 늘어나며 일상 속에 문화가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것을 느낀다. 마침 3월부터 시작하는 정규강좌 접수 기간이 코앞으로 다가와 나예전 씨는 다음 학기에는 어떤 강좌를 들어볼까 고민 중이다. 이번 기회에 예술의전당 아카데미를 궁금해하는 친구들과 성악아카데미를 들어볼까? 15주 강좌 후에는 작은 음악회도 있다고 하니 친구들과 함께 무대에 설수도 있겠다. 아니면 날씨 좋은 날 이젤을 펴고 야외스케치도 할 수 있는 미술실기프로그램을 들어볼까? 사업에 바빠 매일 퇴근이 늦는 남편과 함께 한 달에 한 번 우리나라 곳곳을 여행할 수 있는 <우리 땅 지리여행> 강좌를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나예전 씨의 즐거운 고민은 끝날 줄을 모른다.